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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지리산

by 桃溪도계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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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견딜만하거든 제발 오시지  말라 했거늘, 채 2주를 버티지 못하고 다시 찾았다. 염치없는 줄 알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연은 무덤덤하지만 자애롭고 향기로워서 만날 때마다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느낌이다.

백무동 한신계곡을 따라 세석산장까지 오르는 길은 첫 만남이어서 서먹하다.  웃자란 초여름의 우쭐거림을 계곡의 세찬 물소리가 꾹꾹 눌러 놓으니 땀을 흘리면서도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세월을 따라 꽃 향기도 색깔을 바꾼다. 쥐오줌풀, 노루오줌이 꽃대를 올리고 일월비비추도 탱탱하게 봉오리를 맺어 유혹할 채비를 마쳤다. 곁눈을 흘깃 주면서 미소를 남긴다.

1,500 고지 산장의 저녁은 언제나 그랬듯이 알지 못할 쓸쓸함이 배어 있어 취기를 돋운다. 해가 떨어지기 바쁘게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별자리가 초롱초롱 눈을 뜨고 안부를 묻는다. 나는 겸연쩍게 북극성을 가리키며 아는 체한다.

세석에서 장터목 산장 이르는 길에서 맞는 일출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실망할 일은 아니다. 자연은 언제나 그랬듯이 어제와 오늘이 다를 뿐이다.

천왕봉 오르는 가파른 길이 힘들어도  힘들다 말하지 않는다. 행여 힘이 드니 오지 말라 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세상살이가 만만하지 않아 견디기 힘들었다고 쑥스러운 고백을 한다. 눈치 없이 다음에 또 오더라도 두 눈 질끈 감고 모른 척해주리라 믿는다.

천왕봉에 선 사람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환희로 가득 찬 행복한 얼굴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만면에 미소를 가득 그려 넣었을까.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 힘겹게 오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힘이 들겠지만 정상에 오른다는 희망이 있어서 너무 좋겠다. 내려가는 나는 여유는 있지만 희망은 사라졌다며 너스레를 떠니 가벼운 마음으로 받는다. 즐거운 산행이 되기를 바란다.

하산 완료 지점에서 만난 외국인 처자가 말을 건넨다. 근육에 피로가 과했는지 아이스팩을 찾는다. 그리고 부산 가는 버스 터미널을 찾는 듯한데, 내가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니까 답답한가 보다. 좀 더 수월하게 답변해 줄 수 있을 만큼의 영어 능력이 아쉬웠다. 그런데도 지리산 산행이 멋있었다고 엄지를 추켜올리는 그가 너무 멋지다. 나도 그들처럼 외국 산행을 하며 모자란 언어 소통으로 자충우돌하면서 부딪혀 보고 싶다.

산행을 할 때마다 수월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산행한 후에는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내일도 산행을 예약한다. 나에게는 나도 모르는 마음의 짐이 많이 쌓여 있나 보다.

[산행 일시] 2023년 6월 16일-17일(세석산장 1박)
[산행 경로] 백무동 - 한신계곡 - 세석산장 - 장터목 산장 -  천왕봉 - 중산리(18.3km)
[산행 시간] 12시간


 

싸리꽃
가내소 폭포
산수국
함박꽃
산딸기
눈개승마
꽃개회나무
미나리아제비
물냉이
쥐오줌풀
붓꽃
종덩쿨
병꽃
천왕봉
참조팝나무
노루오줌
병조희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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