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수학여행을 떠났다. 요즘 학생들은 수학여행이 아니라도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많은 여행을 경험한다. 수학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란, 특별히 새로운 여행지를 경험한다는 것보다는 동문수학하는 친구들과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즐거움이 더 클 것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던 30년 전, 같은 반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떠날 때에 학교에 남아서 지도 선생님의 지시에 의하여 화장실 청소하고, 운동장 풀 뽑기로 그 시간을 메운 적이 있다. 당연히 경제적인 여건이 이유였다.
집안사정을 너무나 잘 이해하였던 철든 아이였기 때문에, 그때는 아무 불평이 없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후회스러움은 없다. 다만 아쉬움이 쪼끔 남아 있을 뿐이다.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가서 어떻게 놀았는지, 무슨 즐거움을 가슴 가득 담아왔는지 모른다. 수학여행 갔다는 사실만 나랑 다를 뿐, 그들의 기쁨과 환희를 모르기 때문에 무덤덤했다. 텅 비어버린 4일 동안 남은 친구들과 보낸 교정생활에서 나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어른을 닮고자 했던 설 익은 가슴은 첫 담배를 물고 몽롱한 연기에 제 멋대로 젖어들었다. 수학여행 떠났던 친구들이 부럽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자랑을 늘어놓고, 그간의 경험을 재잘거릴 때도 잘 참을 수 있었다. 그들이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사나흘 지나자 너도나도 사전 만한 사진을 들고 왔다. 그때는 침이 꿀꺽 넘어갔다. 억지로 참았던 부러움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걸 겨우 재웠다.
요즘 수학여행은 그 규모를 짐작키 어려울 정도다. 딸아이 학교에서는 전세 비행기 3대를 예약해서 제주도로 떠났다. 즐겁게 잘 다녀오겠다던 딸아이가 여행 중에 카메라를 바다에 빠뜨렸단다.
30년 전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껏 부풀렸던 사진을 담아 올 수 없게 되었다. 여행의 뒷맛을 고스란히 저려 담은 카메라를 분실했으니 속상할 것이다. 그렇지만, 카메라를 잃어버린 기억까지 보태서 아름다운 추억은 더 많이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남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사진은 없지만, 자신은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가슴이 있으니까 그리 염려하거나 속상해할 일도 아니다.
무사히 잘 다녀오기를 바란다. 오늘 밤에는 나도 딸아이 틈에 끼여 잃어버렸던 수학여행을 찾아서 떠나야겠다.
2007.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