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덕이
고등학교 동기회 모임에서 그를 만난 지 3년이 되었다.
삶에 찌 들은 그의 모습에서 25년의 풍상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25년은 나에게 백지이고, 나의 25년은 그에게 무명천 같은 세월이다.
서로의 지나온 시간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
신상은 어떤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뭐 하고 살아갈 건지....
서로에 대하여 아는 게 없는 친한 친구다.
너무나 긴 세월이라서 한 번의 만남에 회포를 다 풀어내기는 어렵다.
가끔 만나서 새롭게 서로를 알아간다.
왜, 그동안 연락이 안 되었는지도 서로가 이해를 못 한다.
그저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서 반가움만 나누고,
지나온 과거는 묻어두고 틈틈이 꺼내서 안주거리로 삼으면 된다.
한때는 돈을 좀 벌어서 폼도 잡아봤지만,
지금은 빈 털털이 노총각 신세다.
불혹의 나이에 들어서 전기공사 일을 배우며 살아간다.
전공이랑은 무관한 건축현장 전기공사 일을 하게 된 이유는 많다.
자주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씩씩하고 밝은 목소리로 ‘힘들지만 할만하다’ 라며 안부에 답한다.
내가 아는 그는
다른 친구들보다 25년을 늦게 살아간다.
그러니까 아직은 혼기도 여유가 있다.
그래서 더욱 여유 있게 웃는다.
이제는
그를 만날 때마다
지난 25년은 묻어버리고
시시덕거리며 새록새록 우정을 쌓아가야겠다.
그렇다.
그는 송두리째 25년을 묻어버리고 살아가면 된다.
나는
그와 만나는 시간은 25년을 접을 수 있지만,
돌아서면 25년을 금방 회복해서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아무래도 그놈은
나보다 25년은 더 살아야 될 것 같다.
2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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