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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교만 삭이기 - 청계산(10)

by 桃溪도계 2007.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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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도 버릴 수 없음을 안다.

쓰레기나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약간의 땀 방울은 버릴 수 있겠지만,

정녕 인간이 버리고자 하는 그 무엇은 조금도 버릴수가 없다.

 

개나리골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입구에 화훼농장에서 겨울을 이기기 위해 사용되었던 연탄재가 수북하다.

20~30년전에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광경들을 이제는 특정 지역에서 볼 수 있음이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할 뿐, 나는 내 자신의 변화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산을 오를때는 더욱 그러하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현실이 그러하지 않음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개나리골로 향하는 길에 가로등이 이채롭다.

고무바케스로 대체된 가로등 갓은 적잖은 향수를 자극한다.

저런 모습으로 세상을 밝히는 모습을 보고싶다.

저 가로등은

물리적인 어둠만을 밝히는게 아니라

잠시 저 밑에서 서성거리면 어두운 마음도 밝혀줄것만 같다.

 

입춘을 맞는 까치들이 둥지를 보수하느라 난리다.

유난히 따뜻했던 지난 겨울은 까치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게 한것 같다.

아무래도 까치는 이제는 추위가 없다 생각하여 둥지를 보수하고

2세를 볼 준비를 하나보다.

 

까치집 맞은편에 까치집 보다 허술한 인간의 움막이 움츠린채 봄볕을 즐긴다.

몸을 움츠려야만 들고날고 할 수 있을것 같은 저 비닐 움막을 지키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저 밭을 가진 땅 부자일까.

아니면 이목을 피해 흘러들어온 노숙자일까.

 

 

청계산을 오를때마다 저 1,132계단을 밟아야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억지로 계단을 올랐다.

물론 이 계단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 계단을 밟으면 8부능선에 도달하므로

한결 정상이 가깝게 느껴져 힘을 추스를 수 있는 계단이다.

 

청계산 종주산행을 택했다.

몸이 좀 어슬어슬해서 피할까 생각하다가 종주를 선택했다.

산에서 가장 금기시 되는 교만이 발동한 것이다.

망경대의 망경암을 넘기가 만만치가 않다.

조심조심하면서 조금씩 교만을 삭여나갔다.

 

올해들어 처음으로 황사가 시작된 날이다.

황사는 산에까지 쫒아와서 기관지를 자극한다.

 

헬기장에서 이수봉으로 행하는 길에 인생의 여유를 아는 이의 흔적이 포착된다.

나뭇가지 사이에 눈사람을 올려놓고 간 산인의 마음이 푸근하다.

저 사람은 뭘 버려도 한개는 버렸겠지요.

부럽다.

 

역시 버릴려고만 애를 쓰다 버리기는 커녕

산이 품고 있는 힘과 겸손을 얻었으며,

결국은 교만을 다 삭이지 못한 댓가로 몸살을 선물 받았다.

아무래도 이번 몸살은 쉬 가시지 않을것같다.

 

 

* 산행일시 : 2007년 2월 4일

* 산행코스 : 개나리골 - 옥녀봉 - 삼각점 - 매봉 - 만경대 - 이수봉 - 옛골

* 산행시간 : 4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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