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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보물찾기

by 桃溪도계 2006.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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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레쉬가 달린 안전모를 쓰고, 허리띠엔 배터리 주머니를 찬다. 지구를 습격하러 왔다가 탈영한 떠돌이 외계인 같은 복장을 하고 애써 태연한척 웅그리며 비장한 눈빛을 감춘다.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는 인차를 타기 위하여 서둘렀다. 간단히 체조를 하고 갱 입구에서 안전수칙 선서를 목청껏 외쳐댄다. 두려움과 엄습해 오는 공포를 날려 버리려고 더 크게 목청을 돋궈보지만, 날아가지는 않고 작은 가슴속을 헤집으며 시계태엽처럼 감긴다.

 

  암반을 들 쑤셔서 만들어진 갱도에 들어서면 웅크릴 수밖에 없다. 삐쭉삐쭉 아무렇게나 삐져나온 바위 조각들은 보물을 찾기가 쉽지 않음을 암시하듯 예사롭지 않다. 일행들은 포로들이 수용소에 끌려가듯 어두컴컴한 갱도를 앞만 보고 줄지어서 뚜벅뚜벅 걷는다. 외계인에게도 공포는 마찬가지다. 먼지와 뒤 섞인 습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착색되면서 공포감은 더 커진다.

 

  여덟시 반에 도착하는 인차가 라이트를 켜고 덜커덩거리며 정거장으로 밀려온다. 원숭이가 약장사 따라 나와 위세당당하게 앉아서 인간들을 조롱하던 모습이 연상되는 작은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숙명처럼 고개를 숙인다.

 

  타임머신을 타고 지구의 역사가 처음 시작되던 날처럼 궤도를 따라 흡입되듯 빨려 들어간다. 컴컴한 갱도 내에서 빛깔도 방향도 없는 목표를 향해, 무채색의 아름다움을 찾으러 떠나는 이방인처럼 해실한 곁눈질로 갱내를 가늠질 한다. 두렵지만 익숙해질수록 어머니 자궁 속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땅속에는 아무도 없다. 오직 나와 공간 속에 버려져 텅 비어버린 시간만 존재할 뿐 아무도 아는 채하지 않는다. 십리쯤 달렸을까. 정거장에 내렸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다시 타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은하철도 999’ 의 꼬마 승무원 ‘철이’가 안개를 헤집고 나타나서 여권을 보여 달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공명만 울릴 뿐 하늘도 땅도 없는 세상이다.

 

  인차에서 내려 산업용 엘리베이터 앞에서 벨을 눌러 신호를 보내니 넝마주기 망태 같은 엘리베이터가 다가와 무시무시한 철문을 철커덩 열어준다. 꼼짝없이 들어갔다. 내 의지를 읽을 수 없는 공간이다. 그냥 주어지는 대로 걷고 탈 뿐이다.

 

  철문이 닫히고 ‘삐~삑’ 신호음이 울리더니 수직으로 내리 꽂힌다. 블랙홀에 빠진 느낌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로프가 돌아가는 소리와 쇠가 마찰되는 소리만 가는귀를 뚫고 간신히 멍멍하게 들려온다. 습한 훈기가 피부를 스친다. 서늘한 지하수가 안전모와 옷에 투둑뚝 떨어 질 때마다 소름이 움찔움찔 돋는다. 안전모 이마에 달린 불빛으로 일행들의 얼굴을 비춰보며 서로 말없는 언어를 교환한다.

 

  시계로 측정 되어지는 시간은 짧았지만, 가슴에 그려지는 시간은 길었다. 잠시 긴장감을 내려놓듯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지하 육백 미터 지점이다. 돔 구장 같은 커다란 광장으로 이루어진 채광을 하는 전진 기지로서 화장실과 수도 등 편의시설이 고루 갖춰져 있다. 사무실에는 형광등 불빛아래 직원들이 지질도를 펴 놓고 열심히 연구 중이다. 마그마 쪽을 향해 육백 미터를 내려 와 있다는 현실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지하 왕국에 들어와 꿈속을 헤매고 있다. 거기서 운행궤도가 다른 인차를 바꿔 타고 횡으로 십리를 이동했다. 궤도의 마찰음이 심장을 파고든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삼백 미터를 더 내려갔다. 발을 딛고 있는 지점이 지하 구백 미터이다. 심장이 뜨거워 온다. 금방 마그마가 터져서 올라올 것 같다.

 

  보물이 숨겨져 있는 최전선 막장이다. 흙 속에는 보물이 없으므로 오로지 암반을 뚫어야만 한다. 산 전체 암반을 개미굴 파듯이 뚫고 헤쳐야 보물을 얻을 수 있다. 막장에는 채광노동자들이 착암기를 들고 먼지와 힘겹게 싸운다. 그 험하고 처절한 막장에서 하루 여덟 시간을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보물 찾는 일에 열중한다.

 

  밖에 비가 오는지, 부모님이 돌아 가셨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공간이다. 때로는 혼자 일하다 바위에 묻혀도 금방은 알 수가 없다. 동료들 또한 소음과 먼지를 거울삼아 자기만의 공간에서 지구를 뚫느라 여념이 없다. 휴식시간이나 관리자들이 공정순회때에 겨우 자신을 드러내 놓을 수 있는 척박한 공간이다.

 

  경상북도 봉화군에 위치한 아연광산이다. 착암기와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하여 밤낮없이  이십년 넘게 뚫었다. 단단한 암질로 만들어진 산을 스펀지 구멍 내듯이 온통 들쑤셔 뚫어 놨으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땅속이 온통 미로로 만들어져 있어, 길을 잘못 들어서는 날에는 미아가 된다.

 

  땅속에는 인간들이 땅 따먹기 하기 위하여 그어놓은 행정구역의 경계가 아무 의미가 없다. 계속 뚫고 나가면 지구 반대편에 닿는다. 보물만 있다면 우주에라도 닿을 것이다. 일반 제조업은 생산량이 늘어나고 규모가 커질수록 원가경쟁력이 높아지는데 반해, 광업은 생산량이 늘어나고 갱도가 깊어갈수록 원가 경쟁력이 낮아진다는 게 지구를 뚫는데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보물은 차츰 빛을 잃었다. 지구를 뚫을 힘이 떨어지고 착암기와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릴 명분은 퇴색되어갔다. 인간들의 꿈과 희망을 품고 한 시대를 풍미하며, 그토록 개미를 닮고 싶어 했던 인간들은 환경의 냉혹한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패했다. 지하왕국을 건설하려했던 일개미들과 여왕개미는 패잔병이 되어 포로로 전락하였다. 동굴 속에 꿈을 그려놓았던 벽화는 수장된 지 십오 년이 넘었다.

 

  한때는 보물을 캐려고 지구를 뚫었다. 세상 두려움 없이 지구를 벌집 쑤시듯 뚫고 다녔는데, 허망한 욕심이었다. 보물은 마음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에 불과하다. 손에 쥘 때는 보물인줄 알았는데 손을 떠나면 허무한 꿈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렇지만 지구를 뚫어 가슴을 채우려 했던 천진함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던 시절이다.

 

  내일 또 다시 보물이 있는곳을 꿈결에서 풍문으로 들으면, 지구를 뚫어 가슴을 채우러 나설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갖고자하는 보물이 제 가슴속에 무진장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지구를 뚫어 보물을 찾아 나선다. 

 

  우리들은 물질로 이루어진 통속적인 보물을 최고의 가치로 친다. 그런 것들을 자신에게 필요없을때까지 목숨을 걸고 찾는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러다가 때로는 가슴속에 숨겨둔 진정한 보물과 보물주머니를 영원히 잃기도 한다.

 

  인간의 우매함일까.

 

  인간이 우매하다함은 인간답다는 얘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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