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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백수가 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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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실업이라는 버스에 무임승차하여 여행을 하면서도, 주위의 따가운 시선 따위는 감각이 무뎌져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들은 백수라는 직업을 가진 머슴들이다.

  일거리를 찾지 못하는 머슴들을 일러 백수라고 한다. 백수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일을 찾고자 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골품이 높은 백수가 있는가 하면, 일자리를 찾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일자리를 회피하는 골품이 낮은 백수가 있다.

  골품이 낮은 백수는 개인의 문제다. 백수를 만들어낸 사회를 비판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백수를 선택해서 사회적 비판에 앞장서서 자신을 위장하는 머슴들이다. 청년실업이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태연자작하게 백수 생활을 즐기는 집단이다.

  골품이 높은 백수들은 사회의 책임이 크다. 정부는 그들에 대하여 갖가지 정책을 내 놓고 방향을 설정 하지만 쉽게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골품이 낮은 백수들이 버스에서 자의적으로 내려준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쉽게 풀릴 매듭이었다면 애초에 묶지도 않았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청년실업은 전체 실업의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들을 실업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노동시장에 진입을 해 보지 못해서 실업할 기회를 갖지 못한 자들이다.

  정부나 학교에서 백수가 된 머슴들을 구제하려고 갖은 방안을 만드는데 골몰하고 있다. 특히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들이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노라고 당당한 비전을 제시하기도 한다. 툭하면 토론에서 청년실업문제를 다루며 사회적 이슈임을 선점해 나간다. 요란한 방안들만 많지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는 이는 아무도 없다.

  청년백수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아무리 발버둥 치고 요란을 떨어도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유는 오히려 간단하다.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결과만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백수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근본 원인부터 해결해 나가야 한다. 혹자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단정 지으면서, 그들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려는 경향이 많다. 물론, 일부 그들에게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이 땀 흘려야 할 산업현장에 외국 머슴들이 일자리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청년백수문제는 산업구조의 모순에서 발생한다. 청년머슴들이 애써 공부하고 준비해온 일은, 쌀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씨앗의 개발과, 효과적인 생산방법, 생산된 쌀의 판로 확보와 고 부가가치 창출을 통한 수익극대화 및 관리방법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논을 갈아서 씨앗을 뿌리고, 농약을 치고, 탈곡 하는 일을 벌려놓고 열심히 일 하기를 기대한다.

  청년머슴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줄 몰라서 백수로 전락 할 수밖에 없다. 험한 일을 하기 싫어서 백수를 선택하기 보다는 험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못했다. 현재 2차 산업 업종은 일자리가 충분하다. 법률이나 금융, 물류, 의료서비스 등 3차 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머슴들은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20년 전부터 노동시장의 변화를 예측하고, 거기에 맞는 교육정책을 수립했어야 했다. 그때부터 3차 산업 활성화에 따른 노동요구변화의 대책을 세워서 머슴들의 일자리를 기획하고 준비해야 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던지, 아니면 준비가 미흡한 채로 넉 놓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니 정책이라는 게 공염불이 되고 만다.

  청년백수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하다. 산업구조를 3차 산업의 최 정점에서 유지되도록 변화시켜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인력의 요구변화에 맞는 산업구조를 구축하지 아니하면, 청년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 정부는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는 과제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거시적이고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통찰하여 차근히 준비하여야 한다.

  무임승차하는 청년백수들의 감각이 더 짓무르기 전에 시급히 대책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정부가 국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서비스의 능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백수가 된 머슴들에게 노동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동북아의 물류나 금융 허브를 구축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청년들에게 ‘왜 일하지 않느냐’ 라고 꾸짖음을 던질게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천정을 높여주어야 한다. 현재의 산업구조로는 그들이 일어서기에는 천정이 너무 낮다.

  사회 환경이나 변화를 정확하게 읽지 못하여 백수가 된 머슴들에게도 책임은 있겠지만, 청년백수는 그들만의 자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능력을 갈고 닦을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일은 사회가 그들에게 먼저 베풀어야 할 일이다. 백수가 된 머슴들이 하루빨리 땀 흘리는 모습에서 나라의 미래를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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