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사냥
여우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면서 도깨비같이 둔갑을 부리지만, 그를 잡거나 곯려주는 일은 드물다. 그는 방방곡곡 전설 속에 숨어들어 인간
들의 혼을 빼놓는가 하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우는 ‘야시 같은 년’, ‘야시비’, ‘야시짓’ 등 ‘야시’ 라는 닉네임을 달고 다니면서 항상 주변에서 맴돌고 있지만, 그 놈을 잡았다던가 그 놈이 사람을 도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그 놈을 잡으려다 홀려서 낭패당한 얘기들만 구들목에 수북이 쌓여있다. 그만큼 여우란 놈의 하는 짓이 교활하고 영악하다. 인간을 배
경으로 살아가지만 좀처럼 인간의 품속으로는 들어오지 않는 요물이다.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기던 때에 여우를 사냥할 기회가 왔다. 아버지는 낮에는 갓지기의 성화를 피할 수 없어 달밤을 가려서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각골양달
에 나무하러 다니시곤 하셨다. 워낙 벌이가 없던 때라 늦은 밤에 남의 갓에서 서까래감이나 재목감을 베어다가 시장에 내다 팔아 생활비에 보태던 시절이다.
아버지가 서까래나무를 한 짐 해서 들킬까 조마조마한 마음도 함께 지게에 얹고, 삐쭉이 삐져나온 달빛에 쫓기며 지칠 줄 모르고 산길을 달려온다. 묘지 옆에
지게를 받쳐놓고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친구를 기다리다가 살짝 잠이 들었다. 달빛이 표표히 내려와 고요한 시월의 밤을 밝히고 아버지는 달을 향해 피곤을 불
어내며 코를 곤다.
땀이 식고 서늘한 느낌이 들어 실눈을 뜨며 몸을 뒤척거리자 어둠 속에서 무언가 재빠르게 몸을 날리며 바람을 가른다. 날선 눈빛을 쏘아대며 애써 태연한 척
여유를 부리는 여우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달빛도 싸해진다.
묘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여우를 잡으려고 작정을 하고 다시 누워서 자는 척하고 있는데, 무언가가 콧잔등에서 컹컹거린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고 식은
땀이 난다. 단단히 별러서 여우를 확 껴안았다. 여우는 화들짝 놀라서 몸을 피하고는 10미터쯤 가서 획 돌아보며 비웃듯이 도망친다.
이번에는 돌멩이를 두 손에 쥐고서 자는 척한다. 수탉이 적을 만나 깃털을 세우듯 온몸에 닭살을 돋궈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한참 뜸을 들였을까. 사그락
거린다. 여우의 발걸음은 인간이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조심스럽고 치밀하다. 언제 다가왔는지 여우의 길고 빳빳한 콧수염 한 가닥이 아버지 얼굴에 살짝 스친
다. 면도칼로 스윽 긋는 것 같은 느낌에 피가 멈추는 것 같았다.
아랫배에 힘을 모으고 벼락같이 일어나 도망가는 여우를 향해 돌을 던졌다. 두 번째 돌멩이가 여우를 살짝 스쳤다. 여우는 자기 몸에 터럭 하나라도 닿으면
바짝 움츠린다. 그날 저녁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 후, 송진이 뚝뚝 묻어나오는 서까래 한 짐을 지고 묘지에 다다랐다. 순간, 여우가 묘지 구멍에서 나오려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잽싸게 구멍으로 다
시 들어갔다. 시선을 놓치지 않고 넓적한 돌멩이를 주워와 구멍을 막고는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친구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계속 구멍을 지키고 있고, 뒤따라온 친구는 마을로 내려가 마대자루와 볏짚과 땅을 다질 때 쓰는 묵직한 메를 준비해서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올라왔
다.
옛날 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여우사냥 법은, 먼저 마대자루를 구멍입구에 대고 메로 묘를 쿵쿵 치면 공명을 못 견디고 여우가 뛰쳐나올 때 잡는 것이다. 그렇
게 해도 여우가 나오지 않으면 볏짚에 불을 지펴 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여우가 연기를 못 견디고 뛰쳐나올 때 자루에 담으면 된다.
모든 작전준비는 끝났다. 여우는 더 이상 아버지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조심스럽게 구멍을 열고 마대자루를 갖다 댄 후, 친구 두 분이 자루를 맞잡고 숨
죽이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 자루를 잡고 있던 한 분이 어깨가 결린다며 다른 친구와 임무를 교대한다. 아버지는 메로 묘를 힘껏 내리쳤
다. 팽팽한 긴장감에 초롱초롱한 별들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속닥거린다.
호흡을 몰아가며 몇 번을 치자 자루가 덜컥거렸다. 순간,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전설에서만 간간히 전해오던 여우의 교활함을 자루에 담을 수 있게 된 것이
다. 팔뚝에 핏줄이 서고 손가락 마디에 힘이 다 풀리도록 자루를 꽉 잡고 있던 친구 두 분이 동시에 ‘잡았다’라고 소리치며 자루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뿔싸! 전설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자루를 힘차게 들어 올리는 틈으로 여우는 구멍을 뛰쳐나와 저만치 도망가며 아무 일도 없었
다는 듯 흘끗거렸다. 여우는 또 하나의 교활한 전설을 자루 속에 담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