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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주말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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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농장

 


   주말만 되면 맘이 설랜다. 지난주에 김매기 했는데, 오이랑 토마토는 내 꿈만큼 자랐을까.

 

  지인의 소개로 의왕시 왕송호수 근처에 50평정도의 농장을 얻었다. 집에서 승용차로 30분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다소 멀다는 단점을 제외하고는 흠 잡을 데 없는 조건이다. 예전에 문전옥답으로 쓰던 밭이라 시골동네에 들어와 있으면서 집 앞에 위치하고 있어,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농기구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도 있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피하거나 간식을 먹을 때 그늘로 사용할 수 있는 널찍한 처마도 있다.

 

  어릴 때 시골에서 부모님 농사일을 거들어 봤지만, 직접 농사를 짓는 데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파종시기나 재배법이 어수룩해도 동네사람들께 여쭤보고 농사지을 수 있는 후한 인심이 있어 더욱 좋다. 주인집 대문 앞에 있는 밭이라 누가 훼손하거나 해코지 할 일도 없다.

 

  밭주인은 칠순은 건뜻 넘었을 할아버지다. 3년 전에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그 후로 농사짓는 일을 접으셨다. 할머니 돌아가신 뒤에 정신적인 공허감을 메울 길 없어 방황하시는 듯 하다. 평생을 농사에만 매여서 사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고 나니 인생의 덧없음을 많이 느끼신다. 집 마당이나 대문 앞에 나는 잡초도 안 뽑는다. 아예 호미를 들지 않는다.

 

  아들 내외는 수원에 사는데, 주말을 이용해서 가끔 들러서 밑반찬도 챙기고 청소도 한다. 며느리는 청소하다가 ‘아버님 마당에 있는 잡초 보면 뽑고 싶지 않으세요.’ 라며 핀잔 섞인 투덜거림으로 할아버지께 쏘아대지만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이없다. 할아버지랑 식당에 가서 식사 한 끼 하고 아들내외는 휑하니 가 버린다.

 

  할아버지는 일주일 또는 이주일 동안 혼자서 식사며 빨래를 직접 해결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깔끔하고 강단져 보이지만, 마음속엔 허전함이 많다. 좀처럼 말이 없으시고 웃음도 없다. 그냥 깐깐해 보이면서도 수심이 가득 찬 인상으로 말없이 오토바이 타고 경로당에 다녀오시곤 한다.

 

  작년에는 오이, 토마토, 부추, 가지, 고추, 당근, 우엉, 도라지, 고구마, 피망, 들깨, 유채, 배추, 무, 열무 등 가지가지 심었다. 주말이면 정신없이 김매고, 토마토 순 자르고, 고추 지주 세우고, 오이넝쿨 올려주고…….

 

  농사일을 전업으로 하는 농사꾼보다도 더 바쁘게 일했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밀려올 때까지 아내랑 농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때때로 소나기가 내리면 시원하게 비 맞으면서 농사의 기쁨을 알아갔다.

 

  그런데 농사기술은 서툰데 욕심만 많아서 제대로 수확하지 못했다. 밭의 특성이나 기후를 무시한 채 그냥 손가는 대로 모종을 심었더니, 당근이나 우엉 등 뿌리식물들은 제대로 뿌리를 뻗지 못했으며, 배추나 열무 같은 채소 식물들은 억세어서 먹기가 곤란하고 맛도 없었다. 기껏해야 고추나 토마토 정도가 괜찮게 자랐다. 많은걸 깨달았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농사에도 경륜과 지혜가 필요하며, 세상일이 욕심으로 되는 건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올해는 주변 사람들한테 자문을 구해서 모종을 심을 때 밭이랑에 비닐을 깔았다. 잡초가 자라는 걸 방지하여 김매기 일을 줄이기 위해서다. 모종 종류도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로 제한하였다. 밭의 특성이나 기후조건으로 볼 때 열매 식물이 적합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우선 작물의 종류가 적고 밭이랑의 김매기일이 줄었으므로 작물재배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오이는 일주일에 한번 들러서는 수확을 제때 할 수 없다. 손가락만한 오이도 일주일 있다오면 늙어버린다. 밭에 와서 오이 손질 좀 하고 서너 시간 일하다가 돌아갈 때 쯤 보면 오이가 쑥 자랐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성장이 빠르다. 특히 비 오는 날에 오이 쳐다보고 있으면 자라는 게 눈으로 읽혀진다.

 

  지금은 토마토가 탱글탱글하게 익기를 기다리며 조롱조롱 달려있다. 보기만 해도 탐스러움에 가슴이 가득 찬다. 고추나무도 실하게 자라서 고추를 많이 달았다. 제법 농사꾼 흉내를냈다. 수확을 하면 수확량이 제법 많을 듯 하다. 어차피 팔려고 농사지은게 아니라서 수확하더라고 우리가족이 다 먹지 못하므로 이웃에 나눠줄 생각이다. 이웃에 나눠 주더라도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는 농사가 잘돼야 마음이 편하고 속이 덜 상한다.

 

  식물도 자식 같아서 한주라도 안 오면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해서, 웬만한 일 아니고는 일주일에 한번씩 밭에와서 살펴봐야 한다. 특별히 할 일이 없을듯해서 드라이브삼아 오더라도 밭에 오면 이것저것 할일이 생긴다.

 

  처음에는 주말농장을 하면, 애들한테 식물이 자라는 과정과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으로 시작했다. 작년에 더운 날 몇 번 따라와서 호기심에 잡초도 뽑고, 토마토도 따고, 곧잘 하더니 나중엔 싫증이 나는지 따라와도 게으름만 피우고, 빨리 집에 가자고 보채기만 할 뿐 어른들 생각과는 다르다. 올해는 웬만하면 따라오지 않으려고 핑계만 돌탑처럼 쌓아올린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사먹는 것 보다 불편하고 고생이 많은 주말농장에서 왜 힘들게 일하는지 깊이를 잘 모른다. 그냥 단순하게 웰빙의 수단으로 주말농장에서 먹을거리를 보태는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 같다.

 

  싱싱하고 힘있게 쭉 뻗은 고추에서 느끼는 건강한 자식을 보는듯한 포만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 어머니가 주말농장에서 티격태격 가볍게 다투면서도 소록소록 애정을 쌓아 간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 보다도 더 자연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무한한 즐거움을 알기에는 아직어리다.

 

  주말농장은, 도회지에서 생활하는 나에게 감각없이 텅 비어가는 정신적인 황망함을 메워준다.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의 나약함을 새삼 느끼면서 겸손을 배운다. 인간이나 식물이나 정성을 쏟으면, 나를 위해 반드시 웃어준다는 진리를 깨닫게한다. 인간의 탐욕이 지나치면 탐스럽게 달렸던 열매들도 수확이 되기 전에 썩거나 다 떨어져 과욕을 경계하는 준엄한 경계를 가르친다.

 

  주말농장은 단순한 농사일을 하는 농장이기 보다는, 정신을 재충진하는 교육도장으로의 의미가 더 크다.

 

  밭주인 할아버지는 농사를 통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일주일을 지내는 게 의미 없이 힘겨우시지만, 밭이 없는 나는 농사일을 통해서 정신적인 충만감을 찾으며, 또 다른 체험적 사고를 충진하기 위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주말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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