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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관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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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아랑곳 않고 산을 오른다. 어젯밤에 내린 비로 촉촉해서 좋기는 하지만 높은 습도 때문에 오늘 산행 길이 만만치 않겠다. 석수역에서 호암산 삼성산 관악산을 넘어 사당역까지 꽤 장거리 산행이라 마음 매무새를 단단히 여몄다. 들머리에 들어서자마자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호흡도 쉽지 않다. 호암산 정상에 이를 즈음 벌써 지친다. 막걸리 한 잔으로 땀을 훔치고 산을 달랜다. 산은 언제나 그랬지만 오를 때마다 그리움을 더한다. 

 

산을 좋아하는 이는 산을 닮고 바다를 좋아하는 이는 바다를 닮는다 했다. 나도 어느새 산을 닮아가고 있는 걸까. 가만히 되짚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산에 가는 이유는 그를 닮고 싶은 마음이 있음은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산의 무엇을 닮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산을 오를 때마다 대 자연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가다듬고 조용히 겸손을 배우고 싶다. 사람은 산을 만들지 못하지만 산은 사람을 만든다. 산은 아무 말이 없지만 나는 산에서 말없는 가르침을 배운다. 

 

삼성산을 지나 무너미재에서 관악산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지친 발자국마다 숨소리가 가쁘다. 다행히 비가 오지 않고 하늘이 맑아 기분은 상쾌하지만, 땅에서 올라오는 습한 기운은 더딘 발목을 잡는다. 그나마 간간이 불어주는 바람에 가슴이 넓어진다. 가녀린 바람 한 줌이 이렇게 소중할 줄 어떻게 알았으랴. 산은 나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내려놓는다. 

 

비 예보와 명절 전이라 그런지 관악산 정상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듬직한 한강을 중심으로 빼곡히 들어선 도심의 건물들이 아웅다웅 다투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서울 시내 전체를 조망하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멀리 북한산까지 시선이 닿는다. 비 맞을 각오로 올라왔는데 더 맑고 넓은 서울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다. 내 마음을 열어두면 행복은 제 마음 내킬 때 불쑥 다가온다. 나는 그가 온 줄도 모르고 그냥 행복해한다. 산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산행 일시] 2024년 9월 14일

[산행 경로] 석수역 - 호암산 - 삼성산 - 무너미 고개 - 관악산 - 사당역(14km)

[산행 시간] 7시간 20분

 

누리장 나무
호암산 석구상
관악산 기상 레이더
연주대
산기름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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