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山 行

북한산 삼천사 계곡

반응형

무더운 여름을 이기는 슬기로운 방법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즐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볕더위에 계곡을 찾는다. 연신내에서 향로봉 오르는 가파른 길이 더디다. 예사롭게 한 달음에 오르던 길을 중간중간 쉬어갈 수밖에 없다. 쉬어가지 않으면 길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한다.

 

향로봉 오르는 중간 못 미쳐서 약수터에서 마음껏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본능적으로 남는 물을 머리에 끼얹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열기를 식히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서너 번 쉬어서 향로봉 정상에 오르니 혓바닥이 길게 늘어진다. 이런 더위에 산행을 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나마 삼천사 계곡에 몸을 담근다는 기대감이 있으니 버틸만하다.

 

우리는 길 위에서 지쳐가고 길 위에서 단단해져 간다. 산은 육체의 능력으로 오르는 게 아니라 정신력으로 넘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결국 산을 넘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넘는 것이다. 매번 힘겨운 산을 넘을 때마다 곱씹던 이미지를 소환한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환경에 따라 장벽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이윽고 계곡 초입에 들어섰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데 계곡에 물이 없다. 상류 계곡의 특징은 비가 그치면 금방 물이 말라버린다. 온몸이 땀에 절어도 계곡에 몸만 담그면 딱 한 번에 더위를 걷어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참고 왔는데, 계곡에서 물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진다. 그러나 돌이킬 수도 없는 길이니 하산길을 따라 내려가는 방법 외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없다.

 

긴가민가 하면서 기웃거리는데, 맑고 향기로운 계곡의 작은 담潭 하나가 한가로이 하늘을 담고 지친 산객을 기다린다. 앞뒤 잴 것도 없이 와락 껴안았다. 풍덩풍덩 한 김을 식히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우리는 잠깐의 행복을 위하여 더운 여름에 힘든 산을 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일 수도 있겠다. 두어 번 풍덩 빠지고 나니 입술이 새파래져 더 이상 들어가고 싶지 않다. 산을 오르면서 더위에 지쳐 있을 때만 해도 계곡에 들어가면 나올 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인간 몸의 변화가 감정 변화 못지않게 변덕스럽다는 게 믿기지 않기보다는 신기하다. 

 

계곡을 나와서 하산하는 길에 금방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또다시 풍덩 빠지고 싶은 유혹에 솔깃했지만, 그냥 길 따라 순리대로 내려왔다. 행복은 헛 욕심에 빠진 도돌이표에 있는 게 아니라 순리에 있음을 가만히 새긴다.

 

[산행 일시] 2024년 8월 17일

[산행 경로] 연신내역 - 불광중학교 - 향로봉 - 비봉 - 사모바위 - 승가봉 - 삼천사 계곡 - 삼천사 (9.6km)

[산행 시간] 5시간 30분

 

백운대
닭의장풀
산기름나물

 

생강나무
곰취
부레옥잠(삼천사)
상사화(진관사)

728x90

'山 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악산  (16) 2024.09.15
설악산 울산바위 서봉  (19) 2024.09.09
북한산 백운계곡  (14) 2024.08.11
북한산 인수계곡  (9) 2024.08.04
북한산 인수계곡  (9) 2024.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