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오르내리던 숨은 벽 능선 오르는 길에서 컨디션 난조를 겪는다. 더위를 먹었는지, 속도 불편하고 발걸음도 무겁다. 지난주에 이어 폭염을 피해 계곡을 찾아드는 길이 고난의 행군이다. 쉬엄쉬엄 쉬어가면서 오르면 되는 간단한 해법이 있는데도 굳이 서두르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나 자신이 습관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습관이 나를 통제하고 있다.
온몸이 땀에 절어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에서 계곡을 만나니 물 만난 고기가 된다. 계곡에 몸을 담그고 느긋하게 충전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세포가 되살아난다. 더구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니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한 여정이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아름다운 추억의 괴임돌이다.
청담폭포에서 어린아이들 마냥 폭포 샤워를 즐기고 청담계곡으로 들어섰는데, 이정표 없는 갈림길에서 길을 놓쳤다. 가다 보니 계곡 길이 너무 거칠게 느껴진다. 의심쩍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길이 있으려나 기대하면서 계곡 길을 거슬로 오르다 보니 두려움이 엄습한다. 길이 아닌 것 같아 탈출로를 탐색한다. 일단 능선으로 올라서서 판단하기로 마음먹고 잡목이 우거진 가파른 산을 헤쳐가며 올랐다. 온몸에 상처가 나고 벌에 쏘였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길을 잃어버렸다는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산 능선에 올라서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길이 없는 길에서 길을 묻는다. 내 삶의 남은 여정에서 내가 선택해야 할 길은 어디인가. 결국 우리는 길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길을 선택했지만, 그 길도 쉽지 않았다. 당초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계곡을 만나는 곳에서 산객을 만났다. 인적이 드문 산 길에서 내가 가야 할 이정표를 들고 있던 산객은 오아시스였다.
무더운 여름날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니 배도 고프고 더 힘들었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는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기며 좀 더 겸손하고 진중하게 길을 나서야겠다 다짐한다. 만약에 가야 할 길이 선명하지 않거든 되돌아오는 길이 지름길 일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말자.
[산행 일시] 2024년 8월 3일
[산행 경로] 효자2동 - 국사당 - 숨은 벽 - 인수계곡 - 청담폭포 - 청담계곡 - 육모정 - 용덕사 - 우이동(10km)
[산행 시간] 8시간 20분
山 行
북한산 인수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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