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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설악산 울산바위 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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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바위는 애틋한 사랑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지가 설악산 국립공원이었다. 친구들이 흔들바위 전설을 들먹이며 자랑을 늘어놓을 때, 나는 그들의 찰지고 왁자지껄한 환희에 함께 스며들지 못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도시로 유학 떠나보낸 아들 학비 마련하기 빠듯한 부모님께 차마 수학여행을 가겠다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설악산을 누비고 다닐 때, 수학여행 가지 못한 학생들은 따로 모여 빈 운동장에서 잔 돌을 줍고 있었다. 그때 나는 껄렁한 친구들 틈에 끼여 담배를 배웠다. 

 

전국 산을 다 누비고 다니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울산바위와는 인연이 닿지 않아 미답지로 남아 있었다. 드디어 45년간 전설로 남아 있던 울산바위 품에 안겼다. 설악산 대청봉, 공룡능선을 누비며 그저 애틋하게 바라만 봤던 울산바위였는데, 막상 가슴에 품고 보니 얼떨떨하다. 아마 45년 전의 첫사랑을 만났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첫사랑은 쉬 이루어지지 않는다 했던가. 하늘이 잔뜩 흐려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는 촉촉한 품이지만, 그대의 체취를 느꼈으니 뭘 더 바라겠나. 이렇게 얼굴을 내밀고 안부를 여쭙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이제 님 만나는 길을 알았으니 안부가 식기 전에 다시 한번 들러서 못다 한 정을 나누고 회포를 풀어야겠다. 

 

내려오는 길에 흔들바위에 들렀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사람들이 흔들바위를 밀어서 굴러 떨어졌다는 설이 있었는데 말짱하게 버티고 있었다. 낯 선  바람결에 흔들바위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는 풍문이 있어서 아예 흔들어 볼 생각도 않다가 이대로 돌아서면 후회를 남길 것 같아서 흔들어 보았다. 미동도 않을 것 같은 바위가 꿈쩍 거린다. 함께 했던 사람들도 신기한 풍경에 박수를 친다. 흔들바위는 여전히 전설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울산바위를 만났는데도 사랑앓이는 그대로다. 잠깐의 만남이 아쉬워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나는 평생을 두고 그대의 사랑을 놓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프면 아픈 대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먼발치에서 지켜보다가 가슴이 울컥하는 날에는 소문도 없이 다녀가리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복 된 마음으로 건강을 기원한다. 

 

[산행 일시] 2024년 9월 7일

[산행 경로] 설악산 국립공원 - 신흥사 - 계조암(흔들바위) 서봉 - 원점회귀(10km)

[산행 시간] 5시간 40분

 

국수버섯
산오이풀
울산바위 서봉
외계인 바위
서봉을 배경으로
구절초
싸리버섯
계조암 석굴
흔들바위
물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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