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용아장성

용의 어금니라는 별칭을 가질 만큼 산세가 거칠고 위험한 등반길이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고 기다리던 시간이 10년을 훌쩍 넘었다. 산행의 시작은 산으로 떠나는 시간이 아니라 산을 만나기 위해 꿈을 꾸는 시간이라 했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설렘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더 진한 꿈으로 그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용대리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백담사까지 이르는 7km 길은 여전히 땀을 흠씬 쏟아야만 지워낼 수 있는 길이다. 영시암 지나 수렴동대피소에 이르기까지 무덤덤하게 앞만 보고 걸었다. 드디어 한 호흡을 몰아쉬며 옥녀봉에 이르니 여명이 열린다. 용아의 능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산은 거칠거나 평온하거나 높거나 낮거나 언제나 제 나름의 모습으로 산의 기운을 간직한 체 아름다운 온기를 내놓는다. 다시 당신을 만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용아장성 릿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릿지 코스다. 이 코스를 무사히 완주하게 되면 릿지 코스 정규과정을 수료했다 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 다양한 코스를 극복해야 한다. 매 코스마다 두렵고 힘들어 혼자서 이 길을 갈 수는 없다. 전문 암벽팀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길이다. 그들에게는 친밀한 단결력과 신뢰가 최고의 무기다. 고난도의 등반을 함께할 수 있도록 응원을 보내고 자일을 잡아준 리더들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 
 
전문 암벽팀들의 도움이 있더라도 낭떠러지 길에서 자일에 매달려 있을 때는, 공포와 고독의 무게를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 한다. 엄청난 공포 앞에서 극복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으로 고비를 넘는다. 만약 다른 길이 있었다면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 길을 개척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명감으로 임했을까. 험하고 두려운 이 길을 개척하고 희열을 느꼈을 그들이 존경스럽다. 
 
뜀바위 지나 게구멍 바위 가기 전, 그리 높지 않은 오르막 직벽을 오르려고 앞사람 뒤에 바짝 붙었다. 앞사람 디딤발이 있는 단에 손을 올려 균형을 유지하며 기다리는데, 앞사람이 가볍게 뒷걸음치다가 나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을 밟았다. 순간 악 소리도 못했다.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통증이 심해지고 퉁퉁 붓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가던 길을 멈출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불편한 손의 통증을 참아내며 끝까지 완주했다. 손을 많이 써야 하는 코스여서 많이 불편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용아장성 같은 난도 높은 릿지 등반 길은 고통과 희열, 그리고 두려움과 정복감이 공존한다. 이는 평지에서는 결코 느껴볼 수 없는 수직에서 느낄 수 있는 고독한 열정이다. 무사히 완주하게 되면, 힘들지만 우리의 삶을 더 긍정적이고 강인한 행복으로 안내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나에게 용아장성은 언제나 가슴 웅장해지는 신선한 도전의 길이었다. 
 
병원에 들렀더니 손가락 골절이어서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수술하게 되면 당분간 산행을 멈춰야 하나, 걷는데 지장 없으니 산행을 멈추는 것은 과한 엄살이 아닐까. 그래도 당분간은 근신하면서 가족들의 시선을 안심시켜야 되지 않을까. 별별 생각이 늘어진다. 용아장성은 나에게 어떤 진단을 내려줄까.
 
[산행 일시] 2024년 10월 5일
[산행 경로] 용대리 - 백담사 - 영시암 - 수렴동대피소 - 옥녀봉 - 용아장성 능선 - 백담사(26.5km)
[산행 시간] 13시간 40분
 

뜀바위

쑥부쟁이

귀때기청봉

공룡능선

산부추

용의 이빨

마가목

게구멍

쌍용폭포

투구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