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계방산

by 桃溪도계 2023. 12. 24.
반응형


산에도 그리움이 있다.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는 그리움을 따라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한 겨울 계방산에 오른다. 메마른 감성 너머 향기마저 희미해져 가는 나 자신을 깨워보려는 아름다운 매듭이다.

이 길에서 사라져 버린 그리운 것들을 떠올린다. 애지중지 나만의 욕심이었는데, 내려놓고 나니 별 것 아님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산너울의 빛들을 오롯이 드러낸 겨울산에 엷은 먹빛을 들어 한숨으로 그려본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한 여름에 들이쉬었던 긴 숨을 이제야 뱉어낸다.

산호초를 만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온 산에 수정 같은 보물이 천지에 널렸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감탄을 쏟아내는 틈으로 욕이 섞여 나온다. 속앓이 같은 감동을 표현해 내는데 한계를 느끼면서도 행복하다. 난데없이 까만 까마귀 한 마리 하얀 산을 밀쳐내며 힘차게 하늘을 올라 바람을 탄다. 나는 네가 인간을 선택하지 않았던 너의 자유를 이해할 수 있겠다.

겨울 눈 산을 수없이 헤매 다녔지만, 이렇게 숨 막히는 풍경을 만나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산정에서 영하 20도의 추위를 만나면 얼른 산을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일 텐데, 크리스털로 가득 채워진 계방산에서는 영혼마저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다.

이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겠다. 겨울산에 올라 더 이상의 기대는 하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속물적인 욕심이겠지만, 지금부터 나의 겨울산행은 보너스다. 행복한 그리움을 채워가는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겸손이다.

[산행 일시] 2023년 12월 23일
[산행 경로] 운두령 - 전망대 - 정상 - 주목 군락지 - 이승복 생가 - 아랫삼거리(11.5km)
[산행 시간] 5시간 30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생가

 

728x90

'山 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甲辰年 새해 福 많이 지으세요.  (15) 2024.01.02
삼각산  (18) 2023.12.27
삼각산 의상능선  (14) 2023.12.04
삼각산  (23) 2023.11.26
월출산  (19) 2023.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