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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 散文

벌초 단상[伐草短想]

by 桃溪도계 2023.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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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한 사회 변화에 따라 장례문화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불과 삼십 년 전만 해도 매장 문화가 주축을 이루었다. 그에 따라 산소를 멋지게 꾸미고 가꾸는 것이 통례였다. 그 후로 화장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납골당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최근에는 수목장, 잔디장 등으로 진화하여 종국에는 납골당도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지만 조상 대대로 산소를 관리하고 모셔 온 중 장년 층 세대들은 고민이 깊어진다. 벌초 때가 되면 산소를 관리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 일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든다. 어쩌면 벌초라는 문화도 우리 세대에서 종지부를 찍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 출산율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각 문중마다 벌초하는 문제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벌초하러 산에 올라가다 보면 벌초를 하지 않고 묵히는 산소도 종종 눈에 띈다. 산소를 묵힌다 해서 예전처럼 욕을 먹을 일도 아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한다. 명문 종가에서도 조상의 묘를 개장하여 화장을 하고 관리가 수월하도록 조치를 하고 있다는 뉴스가 대수롭지 않다. 
 
아버지 산소 벌초 할 때마다 다가 올 어머니 장례를 걱정한다.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해야 좋을지 궁리를 해도 쉬 답을 얻지 못하겠다. 어머니 돌아가시면 당장은 화장을 해서 아버지 산소 곁에 묻는 방식이 제일 낫겠다 싶다. 그러나 향후 내가 죽고 난 뒤에 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관리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고개가 저어진다. 훗 일을 생각하면 아버지 어머니 산소를 아예 없애는 게 깔끔한 방법일 것이다.
 
해마다 벌초를 두고 친족들 간에 말썽도 늘어난다. 조상 일을 두고 서로의 잇속을 따지듯 목소리를 높이는 게 볼성사납기는 하지만, 마냥 현실을 기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어서 답답함이 쌓인다. 이렇게 조상의 산소 관리를 두고 다툼이 생기고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사회의 변화가 한몫을 했을 것이다. 벌초는 농경문화 시스템에서 잘 맞는 산소 관리 방법이다. 현재의 우리나라는 공업과 상업 문화 시스템이 주력이어서, 문화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당면한 문제점들은 피할 수 없다. 
 
어떻게든 세월은 가겠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성심껏 산소를 관리하고 최소한의 예를 갖추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겠다. 내가 관여하지 않을 세상에 대해서는 쉬 간섭하거나 상심해하지 말자.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세상은 그렇게 제 갈 길을 찾아 슬기롭게 이어져 갈 것이다. 
 
[일      시] 2023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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