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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隨筆, 散文

고향소경故鄕小景

by 桃溪도계 2023.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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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지만, 고향에 노모가 계시니까 좌고우면 하지 않고 명절이면 고향으로 내려간다. 어머님께서 제사 준비 하는 일이 힘에 부치셔서 맏아들인 제게 제사를 모셔가라고 의견을 냈었는데, 동생들과 삼촌께서 고향 가까이 기거하고 있어서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궁리 끝에 손 많이 가는 일들은 제가 서울에서 준비하고, 시골에서 준비할 수 있는 일들은 어머님께서 맡아서 준비하기로 분담했다.

주변에 제사를 본인이 모시기로 결정하고 고향을 내려가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명절에 차가 막히는 고생길을 피할 수 있으니 편해서 좋기는 하겠지만, 그들에게서 고향은 차츰 잊혀가는 기억이 되었다.

삼십 년이  훌쩍 지난 시절,  승용차가 없던 때에 기차표를 예매해서 아이들 데리고 고향을 드나들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고향에 계시던 어머님께서는 손주들이 기차표 예매를 하지 못해 시골에 못 내려올까 봐 당신이 직접 청도역에서 밤새워 줄을 서서 예매를 하고 우쭐해하던 무용담을 늘어놓으시며 손 편지와 함께 기차표를 보내주던 일이 엊그제 같다.

고향 뒷산에는 잊고 지냈던 싸리버섯이 자라고, 알밤이 툭툭 떨어져 흩어져도 아무도 줍지 않는다. 발정 난 고라니가 컥컥거리며 온 산을 흔들어 놓는다. 억울했던 사정을 토설하듯 모처럼 고향을 찾은 산객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아 달라는 듯 삭이지 못한 분을 토해낸다. 산길에서 멧돼지를 만나는 일이 예전에는 흔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잦은 일이다. 생태계가 건강해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개체수가 급증하여 농가에 피해가 커지고 있으니 불안정한 생태계가 안정을 찾아가는 과도기일 것이리라.

감이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의 고향은 나의 감성 포인트다. 노랫말 가사처럼 홍시가 익으면 울 엄마가 생각나는 풍경은 가슴이 넉넉해지는 행복한 그림이다. 오늘 저녁에는 마당에 걸린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추어탕을 넉넉히 끓여 가족들과 재담을 나누며 어머님의 가슴 한 자락에 풍성하게 깃들고 싶다. 어머님은 나의 고향이다. 멀지 않는 미래에 어머님이 계시지 않는 고향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생각만으로도  쓸쓸하다. 어딘가 비어 있어 허전한 고향.
꼭 오고야 말겠지만, 더디게 오기를 바랄 뿐이다.

[일    시] 2023년 9월 28일

산기름나물
잔대
산초
싸리버섯
망개
구절초
등골나물
삽주
며느리 밑씻개
도둑놈가시
물봉선
도꼬마리
나도송이풀
닭의장풀
고마리
사위질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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