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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隨筆, 散文

개똥

by 桃溪도계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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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기도 전에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깨웠다. 추운 겨울 새벽에 털 실로 짠 장갑을 끼고 냉기를 감추려 손을 호호 불던 날. 털실로 짠 두꺼운 양말에 터질듯한 검정 고무신 껴 신고 눈곱이 붙은 눈을 비비며 아침을 맞으러 마실 나들이 하던 날.

짚소쿠리와 삽을 들고 동네 어귀나 마을 뒷골목을 샅샅이 뒤져 개똥을 줍는다. 다른 아이들이 주워가기 전에 서둘러야 몇 덩이라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부족한 잠에 입을 쑥 내밀어도 동정을 받을 길이 없다.
그나마 겨울에는 춥기는 해도 얼어 있으니까 냄새도 나지 않고 줍기도 편하다. 인분도 모자라 개똥까지 주워서 거름을 만들던 시절. 족히 오십 년은 넘은 세월이다.

반세기 만에 개똥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도심지에서는 비닐봉지를 준비해서 견주가 직접 뒷마무리를 해야 한다. 오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개똥의 쓰임이 다를 뿐, 본디 품성은 그대로일 것이다. 다만 사료나 먹이가 바뀌었으니 개똥의 냄새나 성분은 환경에 따라 바뀔 것이다.

미래의 어느 날에는 똥을 누지 않는 개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인간과 개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며 똥개가 아무 데나 똥을 싸면 그 똥을 주으러 다니던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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