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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설악산 공룡능선

by 桃溪도계 2023.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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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마음이 흘러가고 마음 따라 길이 이어진다. 사람은 길을 맺고 또다시 길을 낸다. 그 길에서는 사람이 풍경이 된다.

바이러스가 묶어 놓은 멍에를 풀고 공룡을 만나러 오색의 새벽을 연다. 엊그제 내린 비로 계곡의 물소리가 힘차고 내딛는 발자국마다 습기가 가득하다. 대청봉 오르는 길은 여전히 힘들지만, 초롱초롱한 별들이 깊고 그윽한 눈빛으로 이끌어주니  견딜만하다.

대청봉을 한 뼘 남겨두고 운해에 쌓인 동해의 커튼이 열린다. 대청봉은 언제나 반가운 친구다. 나는 이쯤에서 씨간장 맛을 보듯 나의 산행의 궤적들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찍어 맛을 본다. 정상을 향하여 직진하는 것만이 정의라 생각하고 있는 나의 편협된 토라짐이 언제쯤 깨달음을 얻을까. 평평한 길에도 아름다움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삶의 풍미는 더욱 깊어질 텐데, 아직은 모자람이 많다.

정상 봉우리 부근에서 한 여름에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환희로 바뀌는 순간 나는 울컥했다. 호랑이 꼬리를 닮은 범꼬리, 동해의 거센 바람이 괴롭힐수록 더 강인하게 견뎌냈을 희고 순박한 바람꽃. 반갑고 고맙다.

희운각대피소로 향하는 내리막 길은 그리 길지 않지만 지루하다. 아마 가파른 대청봉을 오르느라 지친 여운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공룡과 어색한 포옹을 한다. 사랑했던 연인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니 서먹하다. 사랑보다는 멀고 우정보다는 가까운 어정쩡한 애정.

한참 세를 불리고 있는 설악의 숲은 깊고 시원하다. 장마철 틈새를 찢고 들어 온 숲길에는 습도가 높아 땀을 비 오듯 쏟아내도 시원함이 뒷맛으로 남으니 감칠맛이 돈다. 공룡능선 길은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순례의 예를 갖추어 겸손하게 맞아야 할 구도의 길이다.

공룡능선길의 백미인 1275봉에서 가슴을 내려 땀을 식히는데,  길에서 인연 맺은 동행인이 1275봉 정상 가이드를 자처한다. 두렵기는 하지만 묘한 호기심에 용기를 냈다. 1275봉 정상의 간지 나는 포인트에서 아찔한 포즈를 취한다. 볼수록 간담이 서늘하지만 간지를 쫓는 인간의 본능을 어쩌지 못하는 나는 철들기까지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겠다.

꼭 이 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솜다리를 만났다. 나에게는 망태버섯과 함께 행운의 부적 같은 아이템이다. 힘든 길에서 당신을 만나면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보랏빛 솔체꽃을 만나는 행운도 예사롭지는 않다.  1275봉 지나 나한봉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힘들어도  에델바이스 향기가 남아 있어 버틸만했다.

마등령까지 이르는 길이 이렇게 험난했나 싶을 정도의 힘든 여정이다. 무덥고 지친 길이지만 동해 바다가 넘칠까 봐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울산바위의 늠름한 자태와 범봉과 천화대의 아기자기한 풍경에 지친 하루를 여미며 비선대로 향한다. 설악의 멋진 풍경들이 하나 둘 잠긴다. 잊어야만 다시 만날 수 있는 운명 같은 것. 나는  또 다른 풍경이 되기 위해 길을 맺는다. 다시 만나자. 설악!

[산행 일시] 2023년 7월 1일
[산행 경로] 오색약수터 - 대청봉 - 희운각 대피소 - 공룡능선 - 마등령 - 비선대 - 설악동(20km)
[산행 시간] 12시간


 

참조팝나무
꿩의다리
백당나무
박새
둥근이질풀
네잎갈퀴나물
은분취
범꼬리
대청봉
종덩쿨
섬시호
금마타리
대청,중청,소청
노루오줌
바람꽃
용아장성
울산바위
솔체
동자꽃
1275봉 정상
병조희풀
솜다리(에델바이스)
터리풀
물레나물
키스바위
짚신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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