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와 청도 경계의 비슬 지맥 능선에서 학암 지선을 만나는 꼭짓점에 맺힌 삼성산 봉우리. 동쪽으로는 팔조령, 서쪽으로는 비슬산과 이어진다.
교가에 등장하는 삼성산을 만나는 일이 그리 쉽기야 하겠냐만은 동네 뒷산으로 올라서 삼성산 가는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등산객이 많지 않으니 길이 분명치 않다. 길 군데군데 멧돼지들이 땅을 후벼 파고 진흙 목욕을 한 흔적이 질펀하다. 중간쯤 갔을 즈음 발정 난 고라니가 맘 편하게 연애 한 판 하려고 폼 잡았는데 난데없이 산객이 나타나 훼방을 놓으니 심술이 났나 보다. 나와 눈을 맞추고는 황급히 도망가길래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아뿔싸! 속이 천불 난 거야. 캑캑거리며 산을 들고 흔드는 바람에 적잖이 겁이 났다. 인기척 하나 없는 산 길에 멧돼지 흔적과 야생화 몇 송이, 그리고 발정 난 고라니의 화난 울음소리. 모골이 송연해진다. 보통 들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 냄새 잘 맡는 고라니와는 근본이 달랐다.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분이 풀리지 않은 그의 울부짖음은 덜컹 겁이 나게 한다.
뒷목이 거슬려도 모른척하고 앞길만 보고 올라가는데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예전에는 들을 수 없는 소리였는데 이놈들도 먹고살려고 여기까지 영역을 넓혔나 보다. 근데 딱따구리 소리가 너무 크다. 아마 암컷이 새끼를 품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저렇게 쩌렁쩌렁 산을 뒤흔들며 나무를 쪼아대는구나 생각하니 거슬리게 들리던 딱따구리 소리가 사랑스럽게 들린다.
삼성산 정상에서 청도 남산과 화악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니 사람 살 만한 고장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푸근하다. 아무래도 나의 고향이니까 점수를 후하게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리라 생각한다.
밤티 고개에 다다랐다. 직진하면 비슬산 방향이고 우측으로 하산하면 달성 우륵이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은 좌측 청도 수야리 방향이다. 인기척 드문 산 길을 혼자 터벅터벅 내려오면서 아버지와 함께 땔감을 구하려 지게를 지고 왔던 추억을 곱씹어 본다. 배고프고 먹을 것 없던 그때가 배곯을 일 없이 뭐든지 풍부한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억지로 지워지지도 않는다.
한 겨울 아버지와 함께 나무하러 와서 반쯤 얼어 버린 도시락을 까먹고 부르르 떨며 지게를 지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내일은 벌초를 하러 아버지 산소에 들릴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오는 줄 알고 계시겠지.
[산행 일시] 2022년 8월 27일
[산행 경로] 수야 3리 - 파고 만댕이 - 삼성산 정상 - 밤티 고개 - 수야 4리 - 수야 3리(12km)
[산행 시간] 3시간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