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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아차산

by 桃溪도계 2022.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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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닮고 싶다]

긴 장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부지방에는 기상관측 이래로 최고의 폭우가 쏟아져 상처가 깊다. 슬기롭게 견뎌내야 할 몫이지만 쉽지는 않겠다.

우중에 비를 피해 오른 아차 산정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사방팔방 탁 트인 시야가 장마에 눅눅했던 가슴을 늘어 말리기에 딱 좋다. 황톳물로 가득 채워진 한강은 황룡이 용틀임하듯 꿈틀거리고, 키재기 하듯 아웅다웅 다투는 도심의 빌딩들은 감당하지 못할 폭우에도 아무 일 없는 듯 무심하게 서 있다.

삼국시대부터 전투의 요충지였던 아차산성 길을 걸으면서 인간들이 영역다툼에 목숨을 걸었던 역사를 되내어 본다. 며칠 전 막내아들과 사소한 다툼을 하면서 상한 자존심을 극복할 방법을 찾지 못해 속상했다. 아내는 아버지가 참으라고 거드는데 참는 게 쉽지는 않다. 아들은 제 자존심 지키려고 끝까지 아버지한테 대든다. 나도 저 못지않게 자존심이 있는데 끝까지 다투자니 못난 아버지가 될 것이고 한 발 물러서 참자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함께한 친구가 거든다. 천하의 이성계도 아들 이방원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함흥으로 쫓겨가서 뒷방 늙은이가 되었는데 부모 자식 간에 그깟 자존심이 대수겠나. 만약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자존심을 끝까지 내세워 아들 이방원이를 꺾었다면 조선의 역사가 무사했겠나. 새겨들을 만한 충고다. 꼭 아들을 이겨야만 이기는 게 아니다. 설령 이긴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아들이 장성하면 아버지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이 쉽지 않다. 비록 아들한테 자존심이 구겨지더라도 가슴으로 삭일 줄 알아야 내 삶의 매무새도 견고해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한 때는 세상 어떤 변화에도 미동 없는 바위를 닮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을 쌓을수록 바위보다는 산을 닮고 싶어 진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에는 산사태에 무너진 상처를 견딜 줄도 알고, 태풍이 부는 날에는 나무가 뿌리째 뽑혀 넘어져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보듬을 줄도 아는 산이 되고 싶다.

[산행 일시] 2022년 8월 15일
[산행 경로] 아차산역 - 정상 - 용마산 - 아차산성 - 아차산역(8.5km)
[산행 시간]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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