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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桃溪遊錄

必敬齋

by 桃溪도계 2021.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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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례]

 

아직 어른 될 준비가 모자라는데 떠밀리듯 어른 행세를 하려니 부담감이 많다. 한 번의 경험이 있으니 안정감이 있으려나 했는데 막상 기일이 닥치니 두렵고 졸린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다. 한 여름에 딸아이 상견례를 준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런 일은 경험이 쌓이거나 시일이 흐른다 해서 익숙해지는 일은 아닌가 보다. 강남에 자리한 필경재란 한정식 집에서 사돈을 마주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지푸라기 같은 아들을 얻어 바람을 막으려 노심초사 애를 태우던 일을 떠올려본다. 울며불며 자라면서도 큰 과오없이 건장하게 자라 준 아들이 대견스럽다. 남들처럼 잘해주지 못한 마음이 가슴 한편에 짠하게 걸려있다. 그보다도 아이를 바르게 키우겠다는 욕심으로 어설픈 훈육 과정을 흉내 내며 상처를 남긴 일들이 못내 아쉽다. 돌이켜보면 그럴 필요가 없겠다 싶으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좀 더 슬기롭게 잘 타이르고 아이들이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며 키우고 싶다.

 

사돈 내외도 우리와 환경이 비슷한 느낌이 들어 한결 마음은 가볍다. 집안 내력이나 재력 등 한 쪽이 심하게 기울어지면 마주 보는 자리가 상당히 불편할 수도 있을 텐데 서로의 허물이 엊비슷하니까 이 또한 다행이다. 아들은 여자 친구를 만난 지 8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으니 이들의 인내심이 멋지고 예쁘다. 긴 시간 동안 서로에게 상처도 있었을 테고 자잘한 위기도 많았을 텐데 슬기롭게 잘 넘겨와서 이렇게 사돈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니 고맙다.

 

바라건대 서로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기도한다. 결혼을 하기 위해 양가에 공식적인 일정이 시작되면 생각보다 복잡하고 난해한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툭툭 불거져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많이 조심스럽고 말 한마디 내놓기가 마음 졸여진다. 행복을 위하여 만난 사람들이니까 오직 행복의 등불만 바라보자. 살다 보면 알량한 자존심을 극복하지 못해 심하게 다투는 일도 생기노니 부디 마음 잘 다스려서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의 행복을 위하여 조금씩 양보할 수 있도록 다짐하자. 이제 일정이 조율되면 결혼식을 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결혼식을 무사하게 치르는 일도 쉽지 않아서 근심이 쌓이지만 순조롭게 진행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즐거움이 더 많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막연히 힘들 것이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세월 지나고 보니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또 있으랴 싶다. 바람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도 사회의 이해관계를 깐깐하게 따지기보다는 넉넉한 가슴으로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 너희들을 키워 본 아버지의 경험으로는 여유롭게 가족을 이루고 아웅다웅 열심히 살아가는 만큼 행복한 일이 또 없을 것이다. 두 번의 상견례를 마쳤지만 아직 한 번의 상견례가 남았다. 이 또한 행복한 일이다.

 

나는 행복하다.

다른 수식어는 필요 없다.

자식이 셋이어서 행복하다.

 

[일시] 2021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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