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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桃溪遊錄

시간을 낚으랴

by 桃溪도계 2021.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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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핑계로 미뤄왔었는데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수술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허리가 불편하신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수술이 두려웠던 어머님께서는 주변의 허리 박사님들한테 들어온 이야기가 많으니 쉬 수술을 결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어느 한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며 스스로 수술을 결정하셨다.

 

척추 협착증이 고착화 되어 수술을 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핀으로 고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나마 연세에 비해서 골다공증 증세가 없어서 금속 핀 고정술을 사용하여 수술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그나저나 수술이 끝나고 나서 회복기에 엄청난 통증을 경험한 어머님께서는 겁을 많이 집어 먹었나 보다. 세상에 살아 있는 자체가 두려워서 안절부절못하신다. 판단력도 떨어지고 본인이 결정한 일에 대해서도 이랬다 저랬다 오락가락하신다.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환경과 시간. 입원도 처음, 수술도 처음, 링거도 처음. 그동안 수많은 병문안을 다니면서 환자들에게 긍정의 카운슬링을 주저하지 않았던 어머님께서 정작 본인이 환자인 상황이 닥쳤는데 갈피를 잡지 못한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기에 불안감이 커져 병원을 두 번이나 옮기기도 했다. 그래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많이 불안해 하신다. 일반적인 경우 수술 후 4주 정도 지나면 웬만큼 회복되기 때문에 별다른 간병이 필요 없다는데 어머님은 염려가 많다. 고심 끝에 큰아들인 내가 어머님 곁에 며칠이라도 같이 있으면서 수발도 들고 재롱도 떨어야겠다 생각하고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 곁으로 갔다. 그런데 막상 어머님 얼굴을 마주하니 전화 음성으로 들리던 불안감이 싹 가셨다. 아들을 보자마자 마음이 한결 나아졌는지 음성도 안정되어 있다. 그동안 병원 모시고 다니며 마음고생했던 막내아들은 섭섭하겠다 싶을 만큼 자신감을 회복했다.

 

올해 팔십의 댓돌위에 올라 선 어머님은 그동안 내가 잠재적으로 인식해왔던 어머님보다는 많이 약해져 있다. 몸이 약해진 만큼 정신력도 야위어있다. 세월 앞에서는 천하의 구실댁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신기한 것은 어머님을 뵌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환자 같지 않은 느낌이다. 허리 수술을 했으니 몸이 불편함은 어쩔 수 없겠지만 자신감은 환자 같지 않은 느낌이다. 이런저런 재롱을 떨다가 쉬시겠다며 침대에 눕는 것을 보고는 봄 향기를 느끼며 저수지로 향했다.

 

나는 고향의 저수지를 좋아한다. 아마 나의 고향에서 저수지를 제외하면 나의 고향이라기 보다는 남의 고향에 내가 업혀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저수지에는 여느 때와 같이 강태공들이 정성을 들이고 있다. 저수지에서 농업용수로 물을 빼기 시작한 지 열흘 정도 되었는데 그때부터는 입질이 없단다. 그런데도 낚싯대를 떠나지 못한다. '노인과 저수지' 그들은 헤어질 수 없는 인연이다. 노인은 칠십 중반은 넘은 듯한데 그 장소에서 하우스를 짓고 낚시를 한 지 십 년이 넘었단다. 주변에 상추, 고추, 가지, 호박 등 갖가지 텃밭도 일궈놓고 있다. 고기도 잡히지 않는데 왜 이러고 계시냐는 질문에 대답을 주저하지 않는다. 고기가 잡히지 않아도 텃밭에 작물들 자라는 재미가 솔솔 하단다. 그는 고기를 낚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월을 낚는 일도 사치란다.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이란다.

 

어머님께서는 지금부터 느긋한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앞뒤 가리지 못하고 몸 보다 마음이 먼저 나대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 이제부터는 앞으로 나아 갈 궁리보다는 그 자리에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스스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날마다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는 어머님. 자식을 위한 기도보다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더 필요한 시점이다.

 

어머님!

당신의 시간은 지금입니다.

내일을 위한 기도 보다는 오늘 이 순간 오직 당신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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