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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隨筆, 散文

청산도 가자

by 桃溪도계 2014.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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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가자

 

 

길의 끝을 가늠하지 말자. 목적지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활시위를 떠나면 습관처럼 곧장 나아가는 줄만 알았는데 삶은 그렇지 않았다. 때로는 표적을 잃어버린 화살처럼 방황하기도 하며 살아왔기에 뒤돌아보는 눈이 서툴다.

 

삶의 이정표를 가누며 바삐 가야 할 이유도 없는데 허겁지겁 쫓기듯 바쁘게만 왔다. 바삐 왔지만 어디를 향해 가는지 망각한 채 본능을 따라 앞으로만 간다. 청산도가 내게 전하는 말은 쉬어라가 한다. 어차피 갈 길이 정해졌는데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자칫 서두르다가 왜 왔는지도 모른 채 돌아서 가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 번뇌 다 내려놓고 산과 바다, 그리고 인심 두둑한 사람들과 살가운 안부도 나누며 쉬엄쉬엄 가도 늦지 않을 터인데 왜 서두르느냐고 묻는다.

 

그곳에는 그들만의 느긋하고 순박한 지혜가 있다. 산비탈을 그냥 묵힐 수 없었던 그들은 다락 논을 만들고, 농지가 모자라는 척박한 섬에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넓히려고 수로를 덮어 그 위에 벼를 심어 구들장 논을 만들었다. 세월이 흐르거나 말거나 그들은 그들만의 걸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던 것이다.

 

뭍에 사는 사람들이 짬을 내어 그들에게 다가가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여쭤도 그들은 말이 없다.

마을 어귀에 새마을 운동 때 지어졌던 수매 창고가 세월을 잊은 듯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고, 작은 골목길에는 시멘트 담장과 돌담이 정담을 나누듯 나란히 서 있다. 외지 사람들이 들락거리면서 인심에 흠집을 냈을 것 같지만 그들의 인심은 상하지 않는다. 바닷바람이 전해주는 흐름 따라 파도가 너울대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은 영혼을 돌아 볼 겨를도 없이 쫓기듯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청산도는 왜 거기에, 언제까지 웅크리고 있어야 하는지 잘 아는 듯하다.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기에 지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비가 내리는 청산도를 하루 종일 걷다가 다시 내 삶의 울타리로 돌아온다. 그를 닮고 싶은 마음에 자꾸 외눈을 감아 보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삶의 길에서 이정표가 지워지면 청산도 가자. 바람 드는 날을 골라 청산도 가자. 파란 보리와 노란 유채를 심어 지워도 지워지지 않을 이정표를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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