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隨筆, 散文

여행가이드의 꿈

반응형

 

여행가이드의 꿈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세상 어디든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여행 가이드를 꿈꾸었던 적이 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앞이 꽉 막힌

남산을 넘어야만 비로소 세상과 통 할 수 있는 숙명에서 비롯된 꿈이었을까. 여행가이드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사실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중국 하문 지역에 여행 간 적이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나서는 것은 언제나 설레

는 일이다. 하문 공항에 도착하여 어리둥절하게 두리번거리며 예약된 여행 가이드를 찾았지만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마중 나온 많은 사

람들이 피켓을 들고 반색하는 모습에서 여행가이드라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잘 아는 친지나 친구를 찾는 모습이었다. 우리를 찾는 여행

가이드도 시골 청년 같은 차림의 젊은이가 손으로 쓴 글씨 판을 들고 반갑게 맞으며 멋쩍게 웃는다.

  

  내가 어릴 때부터 선망이었던 여행가이드라는 사람을 처음 뵙는지라 적잖이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맞은 가이드는 연변이 고

향인 조선족이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머리 기름을 반들반들하게 바르고 나왔을 것 같았는데, 오리털 파가 차림에 스케줄이 가득 담긴

후줄근한 가방을 맨 가이드는 이웃집 동생 같은 풍모여서 잠시 망설여지기도 했다.

  

  처음 맞는 인상이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못 미쳐서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정해진 일을 그를 수는 없는지라 그를 따랐다. 물론 그는 우

리말과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하문 지방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상식을 많이 갖춘 젊은이였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실망이 커져갔다. 그는 우리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하면서 우리 일행을 빈틈없이 잘 안내

하였지만, 결코 자유분방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담보로 다른 사람의 삶의 길잡이가 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다. 막연하게 내가 동경했던 여행가이드라는 직업이 힘들고 초라해보여서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그에게는 마음 놓고 잠 잘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았으며, 식사 시간도 언제나 우리들의 스케줄에 맞춰져 있었다. 그 나라 사정

에 비해 벌이는 꽤 괜찮아 보였지만,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상실한 사람이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일상일 수도 있

겠지만, 어릴 때 내가 꿈꾸었던 여행가이드는 뜻밖의 모습이었다. 

  

  그에게 언제까지 가이드를 할 것인가를 여쭤봤다. 그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것이라는 답변을 자랑처럼 내놓는다. 어쩌면 내가 건방진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은 그의 꿈대로 여행가이드가 되어서 지금 멋지게 일하고 있는데, 내가 어떤 선입견에서 그를 바

라보는 것은 아닐까. 그것 보다는 내가 가졌던 여행가이드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그는 여행사나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일이 꿈이어서 외국에 출장을 가면 훌륭한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일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

다고 했다. 내가 어릴 때 막연하게 꿈꾸었던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의 꿈은 또 다른 꿈이었으니 회상에 젖게 한다. 내가 꿈꾸었던 여행가

이드는, 자신의 삶에서 많은 것을 양보하고 인내하며 살아야만 자신의 직업에 충실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한다.  

  

  물론, 어떤 직업이든지 쉬운 일은 없다. 자신의 에너지를 양껏 내어 놓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출 수 있을 때만이 아름다운 직

업을 가질 수 있다. 여행가이드라는 직업에 대한 나의 환상과 편견이 나에게 혼란을 가져왔을 수도 있겠지만, 막연하게 동경했던 여행 가

이드라는 직업에 대한 실망감이 커진 점은 감출수가 없다.

  

  그와 헤어지면서 우리나라에 방문 할 일이 있으면 내가 가이드를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도 웃으며 흔쾌히 승낙을 했다. 실제로 이루어

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나는 꼼꼼하게 준비해서 훌륭하게 가이드를 할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막연하게 꿈꾸고 있던 훌륭

한 가이드에게 안내를 받는 꿈을 이뤄 주고 싶은 것이고, 나 또한 어릴 때부터 동경하였던 훌륭한 가이드가 되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

다.

 

  여행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번 여행은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었다. 

 

 

 


728x90

'隨筆, 散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時論]시일야방성대곡  (0) 2011.04.20
이청득심 以聽得心  (0) 2011.03.30
삶의 무게  (0) 2011.01.28
春雪  (0) 2010.03.13
팽나무  (0) 2009.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