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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처첩지간妻妾之間

by 桃溪도계 201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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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첩지간妻妾之間

 

 

 

 처는 서방을 위해서라면 맨발이라도 웃으며 걷지만, 첩은 구두를 신고도 색깔이 안 어울린다고 새침 거린다. 서방은 처의 군살박인 맨발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첩이 신은 구두의 먼지를 옷소매로 닦으면서 히죽거리는 모습에서 분별을 찾을 수 없다.

  

  “박 사장!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정말 나쁜 사람이야.”

  “신 여사! 내가 뭘 어쨌다고.”

  

박 사장과 신 여사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사랑하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당신의 울타리 안에서만 야무진 행복을 찾겠노라고 주례 앞에서 엄숙하게 언약했다.

아옹다옹 다투기도 하고 때때로 삐쳐서 단교하기를 반복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을 키워 왔다. 살기 위해서 결혼해야 하는지, 사랑하니까 결혼하는지, 외로우니까 사랑하는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매듭을 흔적 없이 풀어내기란 쉽지 않았지만, 이제 모든 아픔을 지울 수 있겠다고 다짐한다.

  

서로의 성격 탓도 있지만, 당사자들 간에는 상대방이 갖지 못한 장점이 있어서 서로의 허전함을 잘 채울 수 있었기 때문에 영광스런 결혼 테이프를 무사히 끊었다. 재혼이기 때문에  난제로 남았던 자식들 양육문제도 무리 없이 협의가 잘 이뤄져 대체로 축복받는 결혼을 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이들의 결혼을 축하했다. 하지만 튼실한 콩깍지도 마르면 그 꼬투리가 틀어지는 것처럼, 음지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림자가 양지에 서면 보이는 법이다. 박 사장은 신 여사의 다소 뻣뻣한 애정에 차츰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 틈을 노리며 두 사람의 달콤한 사랑을 시기하던 바람둥이 오 마담이 박 사장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드디어 박 사장의 앞뒤 분별 못하는 불륜이 시작된 것이다.

  

오 마담은 박 사장의 바짓가랑이가 닳도록 한 시도 놓지 않고 바짝 따라붙어 다녔다. 차츰 오 마담의 박 사장에 대한 사랑은 집착으로 변해갔고 그의 애정행각은 대담해져서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그 소문은 박 사장의 돌변한 태도를 의심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신 여사에게 헐떡거리며 다가와 볼따구니를 후려친다.

  

신 여사는 내심 타는 속을 꺼내 보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끓였다. 행여 삐쳐서 아주 돌아서 버릴까봐 박 사장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며 눈치만 살피는 시간이 길어졌다. 내 사랑이 소홀한가 싶어 갖은 아양을 떨어 봐도 바람난 서방의 무덤덤한 가슴은 점점 더 두터워져가고, 집에 들어오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생과부가 되어갔다.

  

안타까운 시간들만 왁자지껄하게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며 어설픈 청춘을 조롱한다. 그렇게 듬직하던 서방의 어깨가 얄팍해 보이고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박 사장은 절망으로만 가득 채워진 가방을 툭 던지고는 말없이 돌아섰다. 오 마담과 신접살림을 차린 것이다. 미망이면 체념이라도 하련만 생과부의 질투는 새파랗게 날을 세운다.

  

참다못한 신 여사가 서방을 찾아갔다. 오 마담과 붙어서 희희낙락 하는 꼴에 눈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 이래요?”

  “내가 뭘 어째서?”

  “오 마담이 처녀라서….”

날 선 바늘을 찔러대는 신 여사를 박 사장은 아무 일 아니라며 주섬주섬 자리를 피한다.

  “아무 일 아니라니!”  

  “이건 계약위반이야!”

  “못 참겠어! 소송할 거야!”

  

그 날 이후, 박 사장은 한동안 예전의 듬직한 서방의 모습을 되찾으면서 한결 부드러워졌다. 세상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아이들도 웃음을 이어갔다. 신 여사는 내심 불안해하면서도 다시 찾아온 작은 행복을 아끼고 있었다.

  

신 여사에게 주어진 잠깐의 행복은 첩이 된 오 마담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그동안은 박 사장을 두고 간접적으로 시기하고 싸워왔던 처첩지간에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박 사장이 빠진 처첩지간의 싸움은 아무 의미가 없다. 싸울 필요도 없고 싸워서 얻어낼 소득도 없다. 처첩지간의 싸움은 몸짓만 요란하고 상처만 남는 싱거운 웃음거리다.

  

더구나 박 사장은 처와 첩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실속만 차린다. 앞에서는 골치 아픈 척 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찢어지는 입술을 억지로 오므린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서는 처에게 어깨를 두드려 다독이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는 첩에게 달콤한 키스를 보내며 히죽거린다.

  

첩이야 처 있는 서방을 본 거니까 손해 볼 게 없지만 처 입장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서방을 혼자만 독차지해도 모자라는 게 사랑인데 나누려니 성이 찰 리가 없다. 그냥 반반으로 나누는 거라면 그래도 참을만하지만, 숫제 서방을 첩에게 뺏기는 상황이니까 미친년처럼 그냥 헤헤거리며 모른척하고 살 수는 없다.

  

계륵이라고 했나. 어차피 못 먹을 줄 알지만, 그렇다고 남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신 여사는 몇 날 밤 고민 끝에 소송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계약서를 뒤졌다.

  

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이 또렷하게 적혀있어 신 여사의 염장을 콕콕 찌른다.

‘을(박 사장)’은 ‘갑(신 여사)’의 영업권을 인수하여 영업행위를 함에 있어, ‘갑’이 생산한 제품을 전량 구매하여야 한다. 만일 ‘을’이 이를 위반하여 다른 회사에서 동일 제품 또는 이와 유사한 제품을 구매하거나, 자체적으로 본 제품을 생산하여 영업행위를 할 경우에는 본 영업권 양수도 계약은 무효로 하며, ‘을’은 ‘갑’에게 영업행위로 인한 수익 및 그에 상응하는 무한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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