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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창窓의 미학

by 桃溪도계 2009.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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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窓의 미학 

 

 

 

 

 

창窓의 미학

 

창은 사람의 눈과 같아서 내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놓을 수 있는 통로이면서 세상을 내 마음자리로 들여 올 수 있는 통로이기도하다. 그러므로 창에는 거짓을 담을 수 없으며, 창은 창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치다.

  

현대에서의 창이란 투시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예전에는 투시가 되지 않아도 창의 기능에 모자람이 없었다. 유리를 만들지 못하던 때에 봉창을 내어 대나무로 뼈대를 대고 그 위에 한지를 발라 창을 만들었다. 그때의 창은 눈으로 세상을 보기보다는 마음으로도 충분히 세상과 통할 수 있었으리라.

  

밖이 보이지 않아도 봉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의 온기로 세상인심을 읽을 수 있었고, 가끔 찬 기운이 스치면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어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바깥세상을 살필 수 있었다. 반대로 밖에서 집안의 냄새를 훔쳐 볼 때도 창으로 구멍을 내어 들여다봤다. 그때는 창으로 비춰지는 세상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자신의 행동이나 마음까지도 적당하게 가릴 수 있어서 더 좋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창에 머물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건물 속에 들어가거나 차를 탈 때에도 빛이 들어오는 통로인 창에 본능적으로 기댄다. 그것은빛에너지를 빌어 엽록소를 생산하는 식물과도 같다.

  

신혼시절에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단칸방을 벗어나기 위하여 집을 보러간 적이 있다. 아주 작고 협소한 아파트였지만 거실로 쏟아지던햇볕에 반하여 망설임 없이 단번에 계약을 했다. 강렬한 햇볕이 가슴으로 들어와 눅눅하고 어두운 기운을 몰아내던 그때를 기억하면, 그것을 바라보던 아내의 맑은 미소가 떠올라 마냥 행복하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나는 기차여행을 할 기회가 있으면 창가의 자리를 고집한다. 창밖의 세상을 통하여 자신을 비춰보는 사색을 즐기며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여행의 참맛 때문이다. TV나 영화를 통해서도 많은 풍경들을 접할 수 있지만, 직접 창을 통해서 느끼는 풍경들은 그것과 다르다. 고정된 창을 통하여 세상을 접하는 게 아니라, 창을 움직여서 세상을 보는 맛은 훨씬 더 인간적인 고뇌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이 없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면 우리는 여행의 주체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기차가 인간이라는 화물을 싣고 공간의 이동을 실현하는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건물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창이 없는 건물 속에 갇혀 있다면 인간이 건물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게 아니라, 건물이 인간이라는 화물을 적재하고 시간을 버는 과정일 것이다.

  

기차여행을 하던 때의 기억이다. 지정된 좌석이 창 쪽이 아니라 통로 쪽이었다. 창 쪽의 옆자리는 비어있었고 나는 창 쪽에 앉았다. 물론 두 가지 생각이었다. 첫째는 창을 통하여 바깥세상과 통하기 위한 본능적인 기울임이었고, 두 번째는 나중에 올 사람이 번거롭게 나를 거쳐서 창 쪽으로 드나드는 번거로움을 들어 줄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서 옆자리의 주인이 나타나서는 창 쪽의 좌석을 비켜달라고 한다. 그도 나처럼 창의 미학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때에는 내가 창 쪽의 좌석이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세상과 나와의 관념을 조율하고 있을 때, 할머니 한분이 내 옆에 앉았다. 할머니께서 수심이 가득하고 답답해하시는 것 같아 창 쪽의 자리와 바꿀 것을 권했다. 당연히 그렇게 응해주실 것 같았는데 싫다고 하신다. 자기는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려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통로 쪽 좌석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할머니에게 더 이상의 햇볕은 무의미한 번거로움은 아닐까. 열매를 익히기 위하여 빛을 얻기 보다는 거둔 열매를 갈무리하기 위하여 창보다는 창고가 더 필요 할 수도 있었으리라.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때에는 세상과 통하기 위하여 창을 내어야 하고, 또 어떤 때에는 세상과의 단절을 위하여 열렸던 창도 닫아야 한다. 할머니는 자신에게 열어두었던 모든 창들을 하나씩 닫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게를 하는 지인들이 가끔은 장사가 잘 안된다고 푸념을 하면서 세상인심을 탓하고 자신의 팔자를 들먹이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나는 그들에게 제일 먼저 가게 유리창을 닦으라고 충고한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유리창을 닦으면서 자신을 드러내놓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고세상이 보일 때까지 유리창을 닦다보면 자신의 마음도 닦일 것이며, 비로소 손님들의 마음도 보이게 되고, 손님들이 내 마음을 볼 수 있게 되면 장사는 저절로 될 것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창은 눈과 같아서 창이 건강하면 내 삶도 건강해진다. 창이 맑지 않은 사람에게 맑은 마음을 기대할 수 없으며, 창을 맑게 가꾸지 않고는세상을 맑게 볼 수도 없다. 그래서 가끔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에는 창을 닦는다. 창이 맑아지는 만큼 흐렸던 세상이 맑아지고, 내 마음에 걸렸던 어두운 기운이 걷힌다.

  

언젠가 나의 창을 닫아야 할 때가 되면 나는 맑고 깨끗한 창을 닫고 싶다.

 

 - 파고만댕이의 여름 p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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