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골목길 단상

by 桃溪도계 2009. 12. 2.
반응형

골목길 단상短想

 

 

 

 

 

남해바다 통영에서 갓 올라온 싱싱하고 속이 꽉 찬 홍합을 사라고 골목이 떠나가라 외쳐댄다. 거친 경상도 목소리로 아침을 팔고 있다. 허름한 상가건물을 헐어내고 새로이 건물을 짓느라 콘크리트 붓는 소리, 못질소리, 장비들이 바삐 움직이는 소리로 골목이 가득 찬다. 그 틈을 헤집고 피자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쌩하고 지나가며 골목을 후빈다.

  

유년시절 시골 골목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서 구슬치기나 딱지 치는 재잘거림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다. 아릿한 향수에 실려 있던 유년의 골목길은 아름다움을 잉태한 정겨운 꿈이 있었다.

 

도시의 주택가 골목에는 정겨움 보다는 아픔이 많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무지개꿈 따라 떠난 지 오래다.

순간의 이익에 일희일비하는 소리들로만 가득 차 있다.

생명을 원하고 구하는 소리들로 골목 안에는 발 들여놓을 틈이 없다.

 

오늘날 도시의 골목길은 타인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아픔을 주는 악한 소리로 넘쳐나고, 그 소리들이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겨누고 분별없는 불행의 싹을 틔우고 있다. 그렇지만 골목 안에서의 울림이 비록 거칠고 험할지라도 그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므로 아무리 질러대도 아프지 않다. 

  

골목 안에서는 생존의 모습까지만 허용되어야 한다. 그 소리가 거추장스럽고 때로는 지쳐 쓰러질듯 한 쉰 목소리일지라도 생존하기 위한 목소리이므로 우리는 인간적인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골목 안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우리는 골목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지금은 까마득하게 잊혀 진 유년의 골목길을 가슴에 담아본다. 하루해가 꾸벅꾸벅 조는 해거름이 되면, 길게 늘어진 골목길을 어린 동생 손잡고 어머니 마중 나갔다가 어둠을 안고서 뚜벅뚜벅 되돌아오던 그 골목길이 그립다. 나는 왜 정겨운 골목길을 떠나서 생존의 침이 튀기는 복잡한 도시의 골목길에서 내 삶을 채우고 있는가.

 

 

728x90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첩지간妻妾之間  (0) 2010.09.24
법은 진실을 가려낼까  (0) 2010.06.12
창窓의 미학  (0) 2009.09.22
지구를 돌려라  (0) 2009.08.18
금강의 끝자락에서  (0) 2009.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