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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금강의 끝자락에서

by 桃溪도계 2009.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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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에서 흰 말을 타고 거침없이 달려 금강에 이르러 옥빛 담소에 발을 담그면 삶을 깨우칠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 더 이상의 욕심

은 허물이다. 금강의 품에 안기면 시간이나 공간은 의미 없는 치장이다. 그냥 그대로 시간을 베고 공간에 누우면 자신이 누구이며 무

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강에서 말을 타고 달린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평생을 머물러도 모자람이 없을 금강에서 말을 타고 스치듯이 지나친다는 것은 삶

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깍두기다. 그러니 금강에 이르면 말을 돌려보내고 혼자서 유유자적하게 걸으면 된다. 세월이 가든 공간이

바뀌든 마음 두지 말고 절경에 풍덩 빠지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빨리 가서 뭐하게.

  

  민족의 아픔으로 잠시 휴전선이라는 허리띠를 매고 있는 금강이지만, 우리민족의 웅혼한 기상과 지칠 줄 모르고 흐르는 피를 멈추

게 할 수는 없다. 멈추려 한다고 멈춰지지 않는 까닭이다. 이까짓 허리띠쯤은 옷을 홀랑 벗으면 아무 장애도 아니다. 허리춤에 흔적이

야 남겠지만 그 정도의 아픔은 감내할 수 있다.

  

  백두에서 대간을 따라 내려오다 북녘의 금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휴전선에서 호흡을 모으고 기운을 쭉 이어오면 금강의 남

녘 마지막 봉우리인 매봉에 이른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매봉에서는 자신의 몸인 금강을 볼 수는 없지만 눈앞에 병풍처럼 펼

쳐지는 설악의 늠름한 기상을 담으면 가슴이 울컥한다.

  

  그 자리. 매봉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와 금강의 마지막 끝자락 용대 자연휴양림에서 설악을 바라보며 풀썩 주저앉았다. 친구들이 모

여서 마음을 모으고 정자를 짓고 세상을 헤아려보기로 했다. 금강에 몸을 싣고 설악을 바라본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이 세상 누구

에게도 부러울 게 없는 아름다움이다.

  

  하늘은 손바닥만 하다. 아침이면 그 작은 하늘을 비집고 떠오르는 동해의 맑고 힘찬 태양을 맞아 가슴을 열면 뜨거운 기운이 가슴속

으로 확 밀려들어 온다. 감추고 싶지 않은 뿌듯함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낮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있는 설악을 훔쳐보

는 맛도 일품이다. 작은 하늘에 어둠이 내리면 하늘은 온통 별 밭이다. 훅 하고 불면, 별이 우수수 떨어질 것 같다. 간간히 들려오는

외지인의 인기척이나 먹이를 구하러 산을 헤매고 있을 산짐승들의 씩씩대는 입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위협하는 개 짓는 소리에 별

이 떨어질까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긴장감도 넘치는 기쁨이다.

  

  봄에는 갖가지 산나물과 약초를 내어주어 내 몸의 건강을 살피게 하고, 여름에는 가슴까지 서늘하게 하는 금강의 계곡물과 푸른 이

파리들의 녹색기운을 가슴 깊숙이 밀어 넣어 더위에 지친 심신을 풀어준다. 가을이 되면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갖가지 단풍으로 온 산

을 물들이며 내 마음에 남아있을 분노를 달래준다. 겨울은 어떠랴. 골짜기마다 흰 눈을 푹푹 양껏 담아 욕망으로 가득 찬 불행을 밀어

낸다.

  

  신선이 바둑을 두다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숨겨놓은 곳. 복잡한 세상에서 갖은 스트레스에 지친 마음을 달래고 큰 꿈을 꾸기 위한

둥지가 필요했다면 스스럼없이 금강의 끝자락이 품은 용대리의 품에서 설악을 보라. 친구와 가족이 함께하면 더 좋다.

  

  긴 하품처럼 행복을 마음껏 품을 수 있는 곳. 거기에 나를 내려놓고 싶다. 그곳에 가면 세상 살면서 묻혔던 갖은 때를 지울 수 있으

니 내게 다가오는 불행을 비켜가게 할 수 있고, 내 몸에 습관처럼 베여있는 욕망을 비워낼 수 있으니 신선이 될 수 있다.

  

  행복을 꿈꾸는가. 용대리에 누워서 가만히 가슴에 귀 기울여보라. 티 없이 맑은 행복이 가슴가득 채워지며 도란도란 대는 소리를 들

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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