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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법은 진실을 가려낼까

by 桃溪도계 2010.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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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진실을 가려낼까

 

인간의 삶에는 시비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 시비의 진위를 가리기 위하여 법을 만들었으며, 법 또한 인간이 집행하기에 실수가 생기고,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

는 사례도 가끔 발생한다. 그 반면에 법의 맹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어서 우리는 가끔 법이라는 제도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법원에 갈 일이 없을 줄 알고 살아왔다. 그렇지만 삶의 연륜이 쌓이고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진실을 가려내기보다는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하

여 법원을 찾을 일이 있었다.

 

첫 번째,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랑 놀다가 같은 학교 상급생한테 금전요구를 받았다. 막내는 돈을 뺏기기 싫어서 도망치려고 버

둥대다가 신발주머니로 상급자의 안경을 스쳤는데, 그는 주저 없이 막내의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안면을 가격하여 코뼈가 내려앉는 상해를 당했다.

  

병원을 수소문해서 코뼈 성형을 잘한다는 E종합병원에서 코뼈 성형수술을 받고 보름간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가해자 부모가 전신마취로 수술했다며

과잉진료를 트집 잡았다. 의사의 소견은 어린아이일 뿐만 아니라 어른도 이정도 수술은 전신마취로 수술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환자의 치료부분

은 전적으로 의사의 전문행위이므로 시비 걸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에 덧 붙여 가해자 부모는 의료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아서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며 치료비 이백오십만원을 부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교장실에 술을 먹고 찾아가 학생들 지도 똑바로 하라며 난동을 부렸다한다.

 

당시에 정황을 파악해 본 결과, 가해자 아버지는 그해 1학기 때에도 가해자가 같은 반 아이를 주먹으로 때려서 대문이 한 개가 부러졌는데, 치료비 및 향후

진료비를 부담하지 않으려고 학교 교장실에 가서 행패를 부리고, 담당 치과의사한테도 행패를 부려서 피해자 부모는 질려서 대충 마무리 했다고 했다. 이번사

건이 터진 후에는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번에는 법이 있다는 본때를 보여주라고 아내한테 부탁하곤 했다.

  

당시에는 가해자의 행위가 너무도 괴심하고 분통이 터져서 냉정하게 처리할 자신이 없어서 수술비를 우리가 계산하고 그냥 덮어두었다. 그리고 3년 뒤에 민법

시효가 만료되기 한 달 전 변호사에게 수임료 사백만원을 선급 지급하고 사건을 의뢰했다. 돈 보다는 막내아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 사건을 마무리는 해야겠

는데, 가해자 측 부모와 법정에서 시비를 다투기 싫었던 게 변호사 선임의 이유였다.

 

청구금액은 치료비, 정신적인 위자료, 향후 치료비 등을 포함하여 일천이백만원이다. 가해자 측에서도 변호사를 선임했다.

우리 측 변호사가 “팔백만원정도면 합의를 볼 수 있겠냐?”라며 제의했다.

"우리는 합의가 목표가 아닙니다.”

"재판을 강행 해 주세요.”라고 주문했으며, 가해자 측에서는 육백만원에 합의를 구했다.

육백만원이면 치료비 이백오십만원과, 변호사비 사백만원, 그리고 진단비 등 기타 비용에 턱 없이 모자라는 금액이다.

  

우리 측 변호사는 재판 해 봐야 얻는 실익이 많지 않으니, 판사에게 팔백만원에 강제합의 해 달라고 요청 해 보겠다고 했다. 며칠 후 변호사가 밝은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판사에게 팔백만원에 강제조정을 부탁했더니, 칠백오십만원으로 강제합의금을 결정해 주셨는데 만일, 피고 측에서 이의가 없으면 그렇게 합의

하는 걸로 하자고 했다. 내심, 피고 측에서 칠백오십만원에 합의를 원치 않아, 재판장의 현명한 판단에 의하여 이 사건이 종결되기를 바랐다. 억울함이 많았

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전문건설공사 수주를 받아 공사를 완료하였는데도 ‘갑’측에서 공사비 잔금을 지급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뿐, 수차례 공문을 보내고 애원

을 하여도 지급하지 않고 애를 먹여서 도저히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적이 있다.

  

준공 후 1년 넘은 시점에서 대금지급을 보장받기 위하여 ‘갑’이 시공하고 있는 다른 공사에 압류를 하고 공사미수대금 청구 소송을 냈더니, 갑’은 그렇게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공사금액 만큼 공탁을 걸고는 태연하게 대응하였다.

  

우리가 자금운영에 더 많이 압박을 받기를 기다렸다가 지칠 때쯤에 공사비 일부를 깎으려는 의도인 듯했다. 힘들었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어서 소송을 진행하

는데, ‘갑’은 별별 같잖은 이유를 대가면서 소송을 질질 끄는 게 목적이었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판사의 판결문을 받았다.

  

‘피고는 원고의 공사대금 잔액 전액을 지급하라’

‘부대비용 및 이자는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이의를 달고 부대비용 및 이자를 받아내고 싶었지만, 또 다시 법정에서 씨름하기가 싫어서 그렇게 수용하기로 하고 매듭을 지었다. 결국 갑은 공사대금을 2년

동안 지급하지 않고도 법원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위 2건의 경험에서 법은 약자보다는 강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진실을 가려내기 위하여 법이라는 제도가 존재했고, 적정한 절

차에 의하여 진실을 가려냈다면 당연히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정의를 위하여 존재하는 법을 믿어왔는데, 법이라는 울타리에 들어가 본 사람들은 온당치 못한 결론에 대하여 자신이 좀 양보하여

매듭을 짓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물론, 법이 강자 편에서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주먹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집행되는 이런 경우에는 섭섭함이 많다. ‘법’이라는 제도는 도

덕에 의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차선의 선택으로 만들었기에 어느 정도의 허술함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법을 갖기 위해서는 아름

다운 도덕성을 더 많이 확보하여야 한다는 과제를 해결하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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