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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by 桃溪도계 2006.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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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북녘 십이선녀탕을 등지고 매봉산(1.271m) 정상을 향해 걸음을 딛는다.

그리 급할 것도 없는데 허겁지겁 오른다.

 

탐욕으로 가득 찬 배낭을 매고 욕심을 버리려고 바둥대며

누군가에게 쫒기듯 허기진 발걸음을 채운다.

 

산중턱에 아름드리 자작나무가 무심히 쓰러져 있다.

안쓰럽긴해도 안타깝지는 않다.

그냥 자연인 것을

내가 끼어들 틈이없다.

 

겨울산의 정상에는 나지막히 울리는 비움의 메아리만 있을뿐

내 욕심을 내려놓을 단 한뼘의 허접한 공간도 없다.

 

진정으로 비울때만이 느낄수 있는 작은 행복들이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에 맑은빛으로 투영된다.

 

이세상은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곳이다.‘ 라는 간디의 메아리가

잔잔한 행복에 겨운 골짜기의 잔설에 흔적을 묻는다.

 

산은

허영으로 가득찬 인간들의 욕심을 버리는곳이 아니었다.

그냥 그 자리에 침묵으로 버티면서 꼬질꼬질해진 탐욕의 조각들을

너털웃음속에 은근슬쩍 묻어줄 뿐.

인간들에게 탐욕을 비워달라고 애원하지는 않는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산에서 비울 것도 얻을 것도 없으므로 산에 오르지 않는다.

 

나는 산을 사랑할때까지 산을 오를것이다.

내 탐욕의 큰 그릇을 다 비울때까지 산을 오를것이다.

내 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산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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