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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연평도 풍경(등단작 -2005 계간 '오늘의 문학' 여름호)

by 桃溪도계 2006.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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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평도 풍경



         돈실러가세 돈실러가세

         연평바다로 돈실러가세

         에-에헤야 에헤에-에헤

         에-에헤 에헤 에헤 어하요

         연평바다에 널린조기

         양주만 남기고 다 잡아 들이자

         뱀자(배임자)네 아즈마이

         정성덕에 연평바다에 도장원 했네

         나갈적엔 깃발로 나가고

         들어올적엔 꽃밭이 되었네

         연평장군님 모셔싣고

         연평바다로 돈실러가세


    조기 퍼 실을 때 부르는 연평 배치기소리가 인천항에 아지랑이처럼 들려오면 몸서리 치듯 다투어 배에 오른다. 배 손님들 중 절반은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연평도 주민, 관광객, 면회 가는 사람, 업무 차 일보러가는 사람들이다. 걔 중에는 중병을 얻어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핏기 없는 얼굴로 모포를 뒤집어 쓴 채 애써 한기를 피하는 이들도 한둘 섞여있다.

   

   미역을 늘어놓은 듯한 섬들 사이를 헤집고 네 시간동안 뱃길을 달리면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북한의 산등성이가 보이고 이내 연평도 도착을 알리는 뱃고동이 운다. 안동식당을 경영하는 아줌마 집에 민박을 정하고 여장을 풀었다. 넉넉한 주인아줌마랑 인사도 채 끝나기 전에 황토 빛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해를 건지러 숨을 차며 뒷산에 올랐다.

  

   연평바다의 낙조는 천하일미다. 꽃게 몸통을 저며 정성들여 익히고 쟁반 한가운데 동그랗게 놓고는 온갖 재료로 만든 붉은 양념을 잔뜩 뿌려, 고깃배 두어 척과 한가로이 세월을가로지르는 기러기 떼로 장식하면 가슴속 깊이 재워 두었던 황홀함이 울컥거려 군침을 참을 수가 없다. 안동 친정에서 노모가 정성스레 빚은 메주로 끓인 된장찌개는 육십을 갓 넘긴 식당 아줌마의 구수한 입담 속에 자랑처럼 녹아들어 향수를 채우기에 충분하다.

  

   저녁식사가 대충 마무리 될 무렵 이웃집 권씨 할매가 밤 마실 나왔다. 일사후퇴 때 대수암도에서 불과 2킬로미터 떨어진 연평도로 피난 나오던 얘기를 걸펀지게 늘어놓았다. ‘고향 가고 싶지 않으 세요’ 라는 물음에 ‘맨날 보는데 가고 싶기는 뭘로 가고 싶어’ ‘거기도 섬이고 여기도 섬인데’ 라며 무관심한 듯 받아쳤다. '고향 가고 싶은 마음이 지쳤겠지' 라고 생각했다.

 

   자식들은 모두 인천에 나가서 살고 할머니 혼자만 섬에 남아서 굴 따고, 바지락 줍고, 꽃게 철이면 꽃게 일하면서 연명한다고 하는 할머니의 겹겹이 쌓인 주름 속에는 회한도, 눈물도 말라버린 실 웃음만 남아있다. 할머니의 고향인 대수암도의 저녁은 어떤 모습일까. 가마솥의 완두콩처럼 너무나 흡사한 운명이지만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낸 지 5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생각과 옷차림, 자식들에 대한 애정표현 방법도 사뭇 다르리라. 어쩌면 꿈자리의 색깔마저도 견줄 수 없을 것이다.

  

   연평도의 밤은 고요하다. 담배연기 자욱한 당구장의 불빛과, 화장을 진하게 하고 원색톤의 옷차림을 한 마담이 지키는 카페에서 술 취한 해병대 군인들이 한두 명 비틀거리고,  쉼 없이 들려오는 파도소리 속에 묻혀오는 개 짖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울 뿐 인적이 없다.

  

   새벽녘, 연평도를 들고 시위하는 듯한 군인들의 구보소리에 놀라 일찍 잠에서 깼다. 식전에 연평도를 가슴깊이 기억하려는 끌림에 산책을 나왔다. 초등학교가 한개 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울타리에 있다. 성미 급한 학생들 서너 명이 운동장에서 공차기를 하면서 대처로 나갈 꿈을 다진다. 비릿하기 보다는 상큼한 바람이 옷깃에 와 닿아 작은  포말을 일으킨다.

   

   동네 뒤쪽으로 자그마한 사당이 있어 발길을 옮겼다. 충민사였다. 병자호란 때 임경업 장군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구출하기 위해 명나라로 가던 중 식수를 구하러 연평도에 내렸다가 몇 일 머무는 동안, 간조 때 갯벌에 가시나무를 꽂아 조기 잡는  방법을 연평 주민에게 알려주어, 그때부터 연평도는 조기잡이 때가 되면 전국의 뱃사람들이 성시를 이루었다고 안내한다. 지금은 전설 속으로 쓰러져 가지만, 30년 전 만해도 연평도는 조기잡이의 대명사였다.

  

   이제 조기는 간데없고 그 틈으로 꽃게들이 장을 이루어 중국과 북한 그리고 연평 뱃사람들이 다툼을 한다. 조기잡이 배치기소리는 가끔 들리는 총성에 흔적을 감추고, 말없이 우쭐거리는 파도소리에 묻혀 또 다른 전설을 이야기 한다.

  

   연평도는 이미 사라진 전설속의 조기떼와 새로운 전설을 싹 틔우는 꽃게, 그리고 군 인,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의 장으로 정의된다. 무심한 파도소리와 속절없이 울어대는  뱃고동소리, 그리고 꽃게들이 다투는 총소리 속에서 연평의 풍경은 더욱 진한 그리움으로 자란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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