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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 行

만복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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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복사지

 

기린산을 북쪽에 두고 평야에 자리잡은 만복사는 고려 문종때 승려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정유재란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불타버렸다 한다.

절터의 넓이로 보아 큰 규모의 절 이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실린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의 무대가 바로 만복사이다.

옛 영화는 돌탑과 불상 당간지주 등 몇점의 흔적에 묻히고 무심히 지나는 객들에게 의문처럼 서 있다.

 

도로변에 5미터가 넘는 당간지주가 버티고 있다.

나는 아직 이만한 규모의 당간지주를 본 적이 없다.

당간지주가 서 있는 위치가 현재 절터로 복원된 가장자리 도로변인걸 보면 절터의 전체 규모를 짐작 할

수 있다.

당간지주는 절에서 큰 법회를 벌릴때 법당앞에 불화를 걸기위한 받침돌이었다.

절의 규모를 짐작키 어렵다.

 

보물 30호 만복사지오층석탑이다.

만복사는 절터 중앙에 목탑이 있었던것으로 추정되며 여러개의 석탑이 있었으나 현재는 오층석탑중

5층은 소실되고 4층만 남아서 오층석탑을 경호하고 있다.

만복사지오층석탑의 떨어져나간 지붕의 상처에서 나는 역사의 아픔을 느낀다.

아무말없이 세월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서 있는 저 겸손함에 잠시 할 말을 잊는다.

 

 

보물 31호인 만복사지석좌이다.

불상을 올려 놓기 위한 기단석으로 연꽃문양을 새겼다.

통일신라시대때의 석좌는 8각형이 전형이었는데 이 석좌는 6각형으로 만들어진게 특징이다.

불상은 없고 그 방석만 남아서 세월에 맞서고 있다.

잠시 잃어버린 유물들에 대한 아쉬움을 생각했다.

저 석좌위에 위엄있게  버티고 있던 거대한 불상은 어떤사람의 사리사욕을 채워 줄 명분으로 도둑

맞았을까.

아니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편이 되어 소실되었을까.

 

이 밖에도 만복사지에는 보물 43호인 만복사지석불입상이 전해지고 있으나 이번 기행에서 사진에

담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훗날

萬가지의 福을 만들어 줄 만복사의 재건을 꿈꾸며 쓸쓸한 발걸음을 돌렸다.

종교는 무엇이며,

역사는 또 무엇이며,

인간의 삶은 또 무엇일까.

만복사지를 떠나오면서 화려한 법당에서 목탁이 울리고, 세를 불리기 위해 싸움도 서슴치 않는

일부 옳지못한 종교관을 가진 현세의 종교인들과 대비된다.

만복사의 빈 절터에서 울리는 수행에 대한 깨달음의 법문이 더 크고 진하게 가슴에 울린다.

 

 

* 일    시 : 2007년 9월 9일

 

* 위    치 : 전북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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