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記 行

오세암

반응형

 

오세암

 

강원도 인제군 북면 백담사에서 영시암을 거쳐 6㎞쯤 더 들어가면 오세암이 나온다.

 

오세암은 신라시대 설악산에 불원을 개척한 자장율사가 장경을 전하고 구운의 대도를 찾아서 선덕여왕 13년(644)에 창건한 암자다. 

 

조선 인조(1643)때 명승인 설정대사가 증건하여 개칭하였다. 한국전쟁때 소실된 뒤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참선도량이자 기도도량으로서 이름을 떨쳐 많은 스님들이 주석했다. 김시습이 한때 머물렀으며 조선 중기에 불교 부흥을 꾀했던 보우도 기거했었고, 근대에는 시인이자 스님인 한용운도 머물렀다. 

 

오세암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온다.

 

조선 인조(1643)에 설정(雪淨)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이 스님이 오세암(五歲庵)을 중수한 뒤의 일이었다. 스님에게는 다섯 살 되는 조카가 있었다. 이 아이는 일찍이 양친을 여의고 이 절에 와 있었다. 그해 날이 몹시 짧은 늦가을 10월이었다. 스님이 영동쪽에 볼일이 있어 조카에게 부탁하기를 너는 관세음보살만 부르면서 오늘밤 혼자서 자면 밝은 내일에 내가 돌아오겠다고 하고, 암자를 떠나 영마루를 넘어 갔다.

 

그러나 그날 밤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길도 골짜기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눈이 산같이 쌓여 길이 막히고 보니, 스님도 돌아올 수 없었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눈이 녹기 시작하여 봄이 된 후에 스님은 조카가 죽었거니 한탄하며 돌아오니 조카가 승방에서 관세음보살을 염북하고 살아있었다. 스님은 놀란 나머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조카는 "인자하신 어머니가 와서 먹을 밥과 그리고 젖을 주며 이부자리며 방도 뜨시게 하여 주셔서 죽지않고 삼동을 살았습니다. "고 하였다.

 

스님은 기이하게 생각했는데, 그순간 어디선가 바람소리 같이 휙하는 소리와 함께 흰옷을 입은 부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조카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난 후 스님께 보리기(菩提記)를 주고 파랑새로 변해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다섯 살 어린 동자가 득도하였다하여 이 절 이름을 오세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오세암의 절 명칭은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이 단종의 폐위에 반대해 방랑의 생활을 하면서 이 절에서도 머물러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김시습은 당시 다섯 살때 사서삼경을 읽어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어 오세신동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오세암 마당에 펼쳐지는 내설악 전경이다.

신선이 왕림하였을까.

가슴을 주체할 수 없는 잔잔한 감동이 쌓인다.

오세암에서 공부를 하면 누구나 쉽게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것 같다.

 

 

 

큰 바위가 암자를 껴 안고 있는 형상이다.

내설악 깊고 깊은 골짜기에 꼭 암자 하나가 들어 앉을 수 있는 만큼의 자리만 빌어 오세암이 둥지를 틀었다.

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다.

 

가을햇빛에 쑥부쟁이가 투명한 꽃잎을 말리고 있다.

돌틈에 몸을 의지한 채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만큼의 기도가 필요했을까.

숭고한 기도에 가슴이 짠해진다.

 

오세암에서 내려오는 길...

가을은 끝자락에 서 있다.

오세암의 가을은 마지막 채색에 열중이다.

오세암을 만난 인연으로 작은것 하나라도 깨우침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 일    시 : 2007년 10월 21일

 

* 위     치 : 강원도 인제군 북면

 

728x90

'記 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담계곡  (0) 2007.10.27
영시암  (0) 2007.10.27
현등사  (0) 2007.10.19
만복사지  (0) 2007.09.16
광한루  (0) 2007.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