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너구리와 까투리
너에겐 두려움이었나
나에겐 늘 환희였다
냉정하게 돌아서던 너는
가슴으로 피는 사랑의 흔적을 지우고
부러진 사랑을 꿔매느라
나의 눈빛은 애잔하다
매말라가는 향기가 원망스럽지만
너와 나의 서러움에는
해가 뜨지 않는다
하늘이 높을수록
슬픈 두려움이 새싹으로 돋는다
태풍이 얼쩡거리고 간 하늘은 높다.
모처럼만에 열린 푸른 하늘이 막힌 가슴을 달래준다.
양재천의 7월은 꽃으로 가득하다.
저마다 튼실한 씨앗을 만들기 위해 눈치없이 바쁘다.
보라빛 벌개미취는 향기를 모으고 벌을 유혹한다.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나보다.
부용이 꽃잎을 터뜨릴 준비에 열중이다.
숨바꼭질하듯 몸을 옹그리고 있는 폼이 얼마나 큰 꽃을 내어 주려는지 ...
미리 안부를 여쭈었다.
다음에 너를 만나면 멋진 포옹으로 행복을 알아가리라.
보라빛 산도라지가 한 두송이 외롭게 피어있지만,
작아 보이지는 않다.
강렬한 색이며, 자부심으로 가득찬 꽃 매무새가 예사롭지 않다.
행복한 칠월이 익어간다.
아이들은 더위를 피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더위는 핑계였을게야.
그냥 물이 있으니 뛰어들고 싶었을게야.
아이들에게 더위는 참 고마운 인사다.
짝 잃은 백로 한마리...
양재천의 물고기를 찾는다.
그에게 물은 간식거리가 아니라 주식을 담는 그릇이었으니...
물속에 담근 발이 더 아름답다.
짝이라도 있었으면 더 좋을텐데...
누구를 기다리나.
부들은 외로운 고개를 길게 빼고 시간을 채워간다.
인동초도 칠월의 잔치에 한껏 뽐을 내고 곱게 단장을 했다.
무슨 근심이 있으랴..
원추리꽃이 마지막 정열을 태우고 있다.
우리들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내가 다가가지 않아도 그는 꽃을 피웠을것이며
그가 꽃을 피우던 말던 나도 상관하지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당신을 보는 나는 행복하다.
내 키보다도 더 큰 꽃대에 매달린 참나리꽃이 화려한 모습으로 내려본다
내가 양재천에 그를 보러 오는 줄 어떻게 알았을까.
활짝 핀 꽃송이가 그저 반갑다.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삼각주에 터를 잡은 습지다.
습지생물들이 살아가는 틈에
그들을 먹이감으로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인간이 보기에는 치열한 생존의 모습이 그저 아름답기만하다.
양재천에 터를 잡은 전설적인 너구리를 만났다.
불타는 눈빛은 야성보다는 눈치에 닳았고,
인간들의 심리를 다 파악해버린 느긋함이 얄밉기까지 하다.
저놈은 인간이 다가 갈 수 있는 근접거리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있다.
어쩌다 도심의 열악한 천변에서 삶을 꾸려 갈 생각을 했는지..
배를 굶지나 않는지..
저는 영악하게 잘 살아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측은함이 앞선다.
새끼들과 다른 동료들은 어디두고 혼자만 양재천을 지키는지 외로워 보인다.
가족들과 오손도손 행복한 여생을 보내길 빈다.
하늘수박 꽃이 만개를 했다.
실을 풀어놓은듯 기기묘묘하게 생긴꽃이 올해는 주먹만한 하늘수박을 달아줄까.
하늘수박을 본 지 오래되어 사뭇 기대된다.
까투리 한마리가 길을 잃었다.
푸드덕 거리기만 할 뿐, 잘 날지를 못한다.
도심에 야생의 짐승들이 심심찮게 나타나는 걸 보면..
우리의 환경이 자연 친화적으로 개선되어가는걸까.
아니면..
야생의 짐승들이 야생성을 상실하고 도심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오는걸까.
저놈이 도망 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는데고 쉽게 도망가지 못하고 인간을 의심한다.
훌훌 날아가라....
구룡산에서 본 강남 전경이다.
멀리 북한산의 인수봉과 백운대, 도봉산의 오봉이 어렴풋이 잡힌다.
하늘이 맑다는 것은 행복함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번만이라도 이런 하늘이 내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