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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 行

기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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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KTX 기차를 타고 시속 300km의 속도로 내 몸을 이동시킨다.

인간은 속도에 대한 욕망을 양보할 생각이 없다.

아무리 빠른 속도라도 처음 얼만간 적응시간을 견디고 나면

또 다시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한다.

 

최 첨단 건축물로 지어진 서울역 대합실은 왠만한 공항보다도 더 멋있다.

특히 자연채광을 받아들이는 구조여서 낮에는 불을 켤 필요가 없다.

 

대합실에는 욕망에 자신을 추스르지 못해 불만으로 가득 찬 얼굴을 찡그리고

따분하게 기차시간을 기다리는 사람과

한 치의 양보도 허용 할 공간이 없이 허겁지겁 기차시간에 쫒기는 사람들만 있나보다.

 

 

 

초고속 기차의 세련된 모습과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 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바삐 걷는 사람들에게서

여유를 찾아보기란 쉽지않다.

나는 내게 주어진 운명처럼 좌석을 찾아서 앉는다.

은하철도 999의 승무원이 나타나서 내게 표를 확인할 것 같은 걱정이 앞선다.

나는 철이의 심정이 되어 가슴이 콩닥 거린다.

 

구포역까지 숨도 쉬지 않고 달렸다.

달렸다기보다는 위에서 물을 붓듯이 부어버렸다.

나도 그 물속에 휩쓸려 순식간에 구포역에 다다랐다.

 

서울에서 2시간 30분의 간극을 두고 나는 내 몸을 부산시 구포역으로 옮겼다.

구포역은 아무 말이 없다.

왜 그렇게 빨리 왔는지를 묻지 않는다.

오히려 서먹하다.

 

부산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구포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탔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빨리 내 몸을 이동시키며 왔다가야 하는걸까.

나는 나를 알 수가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의 일편이 이런 모습이어야 하나.

 

 

기차가 플렛폼으로 들어왔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이렇게 빠른 기차만이 내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나.

그건 아니다.

나는 빨리 이동했다는 이유로 행복을 느꼈다기 보다는

괜히 불안해지고 더 바쁜기억만 하나 더 쌓았다.

 

 

기차 유리창에는 갖은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저 사람들도 빠른 몸을 이동시키는 이유를 자신은 알까.

좀 천천히 가면 안되나....

 

할 일을 해결했다는 마음에 한결 가벼워 졌지만,

빠른 이동으로 인한 후유증이 가슴에 짠하게 남아 있을 것 같다.

서울역 광장에는 멕시코 민속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가들이 객들의 시선을 잡는다.

잠시 뒷꿈치를 껍적거리며 어깨를 들썩여봤다.

여운으로 남는다.

 

빠른 기차여행을 마치고...

뭔가 서운함을 간직했지만,

다음에 또 기차를 타면 빠른 기차를 선택 할 것 같다.

억지로라도 늦은 기차를 탈 수는 없을까.

나는 나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무엇을 비워내면....

늦은 기차를 타고도 행복 할 수 있을까.

 

 

*  일      시 : 2007년 5월 27일

 

*  이동구간 : 서울역 - 구포역 - 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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