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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 行

임원항 - 대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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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항/대구의 꿈

 

동해바다를 끼고 단잠에 든 포구 - 임원항.

대구를 잡겠다고 날 선 잠을 깨우는 새벽 항구는 부산하다.

선장님은 새벽 바람이 예사롭지 않아서 마음이 안절부절하다.

 

어제 저녁에 큰 꿈을 꾸었다.

한손으로는 들어 올릴수도 없는 대구가 입질을 하면 어떻게 끌어 올릴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대구랑 한판 싸움을 이길 수 있을까.

설령 올린다 하더라도 배가 힘들어서 선창에까지 못 오면 어쩌지...

정말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어제 저녁까지만해도 일기예보는 순했다.

그러나 새벽 바람은 꽤 성질이 나 있다.

선장은 이제나 저제나 바람이 잦아들까 발을 동동 구른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조반을 챙겨먹고 바람을 재웠는데도 바람은 심통을 거두지 않는다.

아무래도 대구는 우리들과는 인연이 없나보다.

 

통통거리는 뱃소리가 새벽을 깨우기가 무섭게 이내 술렁인다.

갓 잡아온 갖가지 생선들이 주인을 찾는 경매가 한창이다.

새벽 수산시장에는 경매소리로 하루를 연다.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의 눈초리는 헛점이 없다.

 

 

아침태양이 바다와 하늘을 선명하게 가르며 의식을 준비한다.

어느 누가 이 바다를 보고 경이롭다 하지 않겠는가.

안타까운 시간이 흘러도 바람은 잦아들지 않고

우리는 차츰 희미하게 대구를 가슴에 새기기 시작한다.

 

 

 

선장은 결심했다.

오늘은 바람 때문에 바다를 나갈 수 없습니다.

대구와 우리와의 인연이 쪽빛바다에 그림자를 감춘다.

폐 목선은 나의 가슴처럼 바다에 나갈 꿈만 간직한채 수리중이다.

 

 

어부는 끝내 바다에 나갈 꿈을 접었다.

아침 9시, 어부는 배를 정박시킨채 태백산맥에 산나물을 뜯어러 갔다.

어부가 산으로 산나물을 뜯어러 가게 만든 건 바람이다.

그 바람은 우리를 대구와 갈라 놓았다.

 

 

아침에 갓 잡아온 싱싱한 방어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저 무더기에 쌓여 있는 생선들은 왜 나를 보지 못하고 널부러져 있을까.

생명이 다 했는가.

생명이 열리지 않는다는 건 너와 나의 관계를 이을 끈이 없어졌다는 얘긴가.

바다여..

그대여..

바람부는날 어부의 아침이여..

 

작은 상어 한마리 ....

응겹결에 잡혀와 몸도 펴지 못할 작은 그릇에 담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시 바다에 뛰어 들 수 있는 행운이 그에게 올까.

 

그물에 걸린 고기를 걷어내는 아낙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우리는 대구의 꿈을 호주머니에 꼬깃꼬깃 밀어넣으며 태연한척 임원항을 빠져나왔다.

 

* 일    시 : 2007년 5월 20일

 

* 위    치 :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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