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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 散文

피안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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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을 꿈꾸며


  이데올로기는 인간만이 가지는 특수한 사회성에 뿌리를 두고 인간의 필요에 의하여 인간을 지배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성되어 시대변화에 따라서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고, 때로는 인권을 유린하면서 기득권층의 입맛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인간의 사회성은 역사적 환경에 따라 변화되며, 아울러 이데올로기도 변한다. 동물들이 힘의 원리에 의해 조직이 지배되고 관리 되는 건 인간세계와 별 다를 게 없지만, 인간의 조직세계는 단순히 육체적인 힘에 의해 지배 되는 게 아니다. 고도로 발달된 사회 조직의 부산물인 재산이나 권력에 의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형성, 유지 되어 왔다.

  

  역사는 한 번도 지배자의 논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인간의 사회가 유지 되는 한 앞으로도 불변의 논리 일 것이다. 설령 인간이 지구를 떠나 또 다른 행성에 가서 정착 하더라도 변치 않을 것이다.

  

  물론, 인간은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사회성을 유지 하려 하겠지만, 지배층은 기득권을 유지 하려 하고, 피 지배층은 지배층이 되기 위한 도전으로 인간의 욕망이 정의 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그 시대 상황에 맞게 무수한 이데올로기가 탄생 되었다. 봉건적 이데올로기가 몇 세기에 걸쳐 인간 지배의 도구로 활용 되었으며, 1세기 전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동시에 탄생되어 피 지배층을 유린하고 이데올로기 싸움에 인간들의 사상과 감정이 비참하게 함몰 되었다. 작금에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거의 몰락하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만 남아 인간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도 그 생명이 다 한 듯 가쁜 호흡을 몰아쉬고 있다. 물질 만능주의의 끝없는 팽창 식 본능 욕구에 한계가 온 것이다. 사회 구성원인 인간들이 극도의 이기심에 현혹되어 이타심을 상실하고 자기모순을 벗어나지 못한다. 소비 지향적인 삶의 추구는 환경을 무자비하게 파괴 해 나가고 있다. 또한, 팽창심리에 사로잡혀 배가 터지는 줄도 모르고 먹는 일에만 급급하여 태산만한 배를 움켜쥐고 거동하기도 힘든 상태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 온 흔적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를 원하고 있다. 인간이 원한다기 보다는 역사적 소명이다. 역사는 어떤 형태의 이데올로기를 원하는 것일까.

  

  미래는 도덕적 완성도가 높은 이데올로기가 인간세상을 지배 할 것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청렴도의 가치기준에 부합 되어야 하고, 기업을 하는 사람은 베품의 미덕을 갖춰야 하고, 철학을 하는 사람은 예절과 겸손을 이념적 가치로 인정할 때, 인간사회는 유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탐욕과 부패와 팽창성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도덕적 이데올로기즘이 서서히 잉태 되고 있다. 도덕에 가치를 둔 이데올로기는 경제적인 욕구 충족의 한계성으로 인하여 이상적인 피안이 될 수는 없겠지만, 현실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 할 수 있는 대안은 될 수 있다.

 

  이데올로기란, 역사의 환경과 순환성을 바탕으로 하여 성장하므로 우리가 느끼는 순간 이미 떠나 버리는 속성이 있다. 일부의 사람들은 욕망이라는 물감으로 퇴색한 이데올로기에 색깔을 입히는 일에 몰두하고 있지만, 지친 이데올로기는 이제 원색의 색깔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우리는 원색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무던하게 세상을 다 품을 수 있는 무채색의 도덕적 패러다임으로 구축된 이상적인 피안을 추구하고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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