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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 散文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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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장마철 국지성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는 날 중부내륙고속도로 상행선 여주분기점 2km 못 미친 지점을 시속 100km 정도의 속도로 통과할 때다.

갑자기 양동이로 퍼붓듯이 비가 쏟아지고 빗물이 차창의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순간 본능적으로 속도를 줄였다. 그때였다. 차가 강물에 떠 있는 배가 되어 핸들이 조종능력을 상실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내린 빗물이 미처 배수구를 빠져나가지 못해서 고속도로가 강물이 되었던 것이다. 차는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방어할 틈도 없이 중앙분리대를 들이박았다. 찰나였다. 차가 뒤집히는 줄 알았다. 다행히 뒤집히지는 않고 튕겨서 사선으로 두 개의 차선을 넘어 오른쪽 철제 가드레일을 들이박았다. 아주 짧은 순간 가드레일 쪽으로 튕겨나가는 차 안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내 가족과, 내 삶과, 내 운명의 의미를 되새겼다. 의도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짧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차가 오른쪽 가드레일을 향해갈 때, 잠시 가드레일을 이탈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이었다. 차는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다시 도로 한복판으로 튕겨 나와서 도로 한가운데에 멈췄다. 앞바퀴 두 개가 박살이 나서 프레임이 바닥에 닿아서 더 튕겨나갈 힘을 상실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안전벨트를 매었으며,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났던 일들을 아주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정신을 잃지 않았다. 멈춰 선 차 안에서 얼른 나와서 조치를 해야 하는데 나는 멍하니 있었다. 차 안에서 보험회사에 전화하여 접수하고 레커를 기다렸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밖에 나가는 걸 두려워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잠시 정신을 추슬러 밖으로 나왔다.

 

천만다행이었다. 차가 고속도로에서 지그재그로 튕기고 있을 때, 옆 차선이나 뒤에서 오는 차량이 없어서 2차 사고가 없었다.  그리고 차가 멈춰 선 뒤에도 내가 차에서 내리지 않았는데, 뒤에서 오는 차들이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비상깜빡이를 보고 멈출 수 있어서 나는 사지에서 살아 나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레커가 내 차를 끌고 사지를 벗어났다. 돌이켜 생각해도 아찔하기 그지없다. 사지의 가시밭길에서 온전하게 내 몸만 빠져나왔다. 외상이 한 군데도 생기지 않았다. 자동차공업사에서 일천삼백만 원의 수리견적이 나왔다. 폐차를 고민해야 하는 수준이다. 착잡하다. 일순간에 번개처럼 일어난 일인데, 차는 박살이 나고 나는 몸만 빠져나와서 호사스럽게 차량수리비 걱정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간하한 일인가. 

 

현대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자동차 핸들을 잡은 이래로 처음 사고를 냈다. 그동안은 내게는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는 자만심이 있었다.  이제는 나도 차량사고의 문신을 몸에 깊이 새겼다. 차량 속도를 10% 정도 줄여서 운행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진다.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질지 모를 일이다. 목숨을 담보로 한 차량운행은 변명으로 갈음할 수가 없다.

 

(2007년 7월 4일 09시 37분경, 중부내륙고속도로 상행선 여주분기점 2km 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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