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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방 이야기(계간 오늘의 문학, 2006년 봄호 게재)

by 桃溪도계 2006.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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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로부터 방은 우리 삶의 모태이다.

  

  어머니가 거처하면서 가계의 중심을 잡고, 집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감출 건 감추고 부풀릴 건 부풀려서 집안의 잡음을 재우며 기거했던 안방. 대문 가까이 위치해 있어서 방문자들을 맞고 아랫사람들을 호령하고 바깥일을 주로 하시는 아버지가 기거하던 사랑방.

 

  자식들이 소복이 꿈을 키우며 생활하던 작은방. 경제권을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느지막이 한가로움을 쫓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로 기거하던 건넌방. 가끔씩 찾아드는 손님이나, 방물장수로 나왔다가 하룻밤 쉬어가는 뒷방.

  

  좀 더 넓게 시야를 돌려보면, 궁궐 내에는 그 이름과 용도를 다 알기 어려울 만큼 많은 방들이 있다. 그 방의 위치나 장소에 따라 궁궐 내에서의 입지가 달라진다. 내관이나 빈들 이 방의 위치를 바꾸려고 아귀다툼 하는 통에 역사가 바꿔지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권문세가에서 위세를 뽐내기 위해 지었을 법한 99칸으로 된 수많은 방이 있는 집은, 그 많은 방마다 용도를 정해서 제대로 사용하기도 전에 가세가 기울어 결국엔 허영의 흔적만 남겼던 방.

  

  현대의 방은 한 울타리 안에서 맨발로 모든 방을 드나들 수 있는 구조여서 예전처럼 방의 용도가 특별하게 규정되어지지 않는다. 용도의 구분보다는 1인 1방을 선호하는 추세다.

  

  이처럼 방은 기본적으로 주거의 형태를 규정짓는 하나의 단위였으며, 가족의 주거문화를 대변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방의 의미가 좀 다르게 정의되어 진다. 주거문화 중심에서의 방이 상업적인 용도로 변신을 거듭해서 별별 희한한 방들을 만들어 낸다.

  

  가장 대표적으로 노래방이 있다. 일본의 가라오케를 들여와 우리나라에서 정착한 노래방은 천하무적이다. 가무를 즐겼던 민족의 잠재적인 의식과 전통적으로 방을 선호했던 친근감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만들어진 노래방은 우리나라 내에서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를 거점으로 세계적인 방으로 변신해 가고 있다.

  

  PC방은 또 어떤가. 인터넷 강국의 위치를 구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PC방은 노래방에 버금가는 위세를 떨치고 있다. 최근 일본이나 미국등지에서 고유명사로 선택되어지는 등 그 문화적 역할이 정치인들의 외교력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PC방 못지않게 게임방이 주변에 가깝게 다가와 있다. 청소년들이 드나들 수 있는 오락실 개념의 게임방도 있지만, 주로 어른들이 이용하는 게임방은 다소의 도박성을 동반하여 중독성에 물들게 한다. 최근에는 순수게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보드게임방을 자주 이용한다. 게임방은 도박성을 동반하는 부작용도 있지만,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공간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한다.

  

  최근엔 화상채팅방이란것이 생겨서 IT 산업의 시험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왠지 뒤가 좀 꾸린 냄새가 난다. 자칫 음성적으로 발전해서 불륜이나 탈선의 빌미를 제공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탈선의 온상임이 선언되었지만 아직 그 뿌리가 없어지지 않고 있는 전화방은, 성인남자의 호기심과 성인여자의 수입 수단과 맞아 떨어져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전화방과 역할은 다르지만 탈선의 텃밭으로 자리 잡은 휴게방이 있다. 원래의 취지대로라면 문제될게 없지만, 휴게방 역시 단순한 휴식의 개념보다는 남정네들의 욕구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자리를 굳혔다.

  

  휴게방이나 전화방은 남자 1인이 주로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인데 반하여, 남녀 공동으로 탈선이나 불륜을 행할 수 있는 비디오방이 있다. 영화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오붓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생겨난 문화지만, 서서히 변질되어가면서 주로 청춘남녀들의 탈선의 장소로 많이 이용되어진다.

  

  비디오방과 똑 같은 조건에서 좀 더 고급스럽게 꾸며진 DVD방이 있다. 영화를 보는 화질의 차이만 있을 뿐 비디오방이 갖고 있는 장단점을 똑같이 가지고 있는 방이다.

  

  아주 음성적인 위치에서 간판도 없이 성업 중에 있는 보도방이 있다. 얼핏 들으면 언론과 관련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룸싸롱이나 단란주점에 접대부를 제공하고 관리하는 업종이다. 최근엔 노래방 도우미도 보도방에서 챙기고 있다.

  

  국민의 건강지킴이로 자처하면서 탄생한 찜질방은 수천 년 내려온 목욕문화를 바꿔가고 있다. 몸의 때를 벗겨내는 단순한 목욕의 개념을, 문화공간으로 바꿔 가고 있다. 유행처럼 왔다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성업 중이다. 설령 사라진다 해도 찜질방이 갖고 있는 특성을 아주 버리지는 못할 만큼 그 뿌리가 튼실하다.

  

  이밖에도 여자 머리를 단정하게 해결해주는 머리방이 있고, 대형 종합병원에 가면 수술방이 있다. 위에서 열거한 것 이외에도 수많은 방이 있다.

  

  신기하게도 상업수단으로 방이라고 이름 지어진 업종 대부분이 생겼다 하면 쉽게 없어지지 않고 그 명맥을 잘 유지한다. 그게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모델이든, 부패하고 탈선하는 음성적인 모델이든 구분 없이 성업 중에 있다. 아마 우리나라 민족성과 방과의 궁합이 잘 맞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뭐라고 단정하여 속단할 수는 없다.

  

  이렇게 수많은 방들이 상업적인 수단으로 활성화되기 이전에 우리나라에는 세계를 주름잡던 방이 있었다. 다름 아닌 신라시대 때 당나라에 있었던 신라방이다. 해상왕 장보고가 중국의 상권을 제패하여 부를 축적하고 국력을 쌓아갔던 시대에 무역인들이 물품의 매매 시기를 가늠하기 위하여 대기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중추적 역할을 했던 것이 신라방이다. 현대의 상업적인 의미의 방과 그 기능이나 역할이 흡사하다.

  

  우리나라 민족성과 방 이라는 공간이 조화를 이루면 독특한 힘을 발휘한다. 물론 부정적인 용도로 이용되어지는 부작용도 있지만, 다소의 부작용 보다는 좀더 큰 의미에서의 긍정적인 방을 만들어가면서 우리의 방을 세계의 방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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