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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山 行

13. 오대산(소금강)

by 桃溪도계 2006.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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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행일시 : 2006년 7월 8일

 

2. 산행코스 : 진고개 - 노인봉(1,338m) - 낙영폭포 - 광폭포 - 삼폭포 - 백운대 - 만물상 - 구룡폭포

                   - 삼선암 - 연화담 - 금강사 - 십자소 - 무릉계

 

3. 산행시간 : 4시간 30분

 

 

  불같은 태양빛에 장마도 쉬어가는 듯 한숨 돌리는 틈을 비집고 오대산 진고개의 산허리를 단단히 감아쥐었다.

 

  특별한 의미가 없음을 알지만 버릇처럼 되묻는다. 오대산은 어인일로 오르는가. 그건 나도 모르네. 자네는 아는가.

 

  내가 오는 줄 모르고 미처 준비를 못했나보다. 진땀을 빼며 호흡이 거칠어진다. 정상부근에 오를 때까지 포근히 감싸 안지 못하고 걷돌린다. 노인봉 능선 길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며 긴 한숨을 돌렸다. 그제야 엷은 미소로 나를 안아주는 듯 하다.

 

  노인봉은 오대산의 제일봉은 아니지만 주변의 시야가 거침없이 탁 트여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다. 노인의 이마 같은 바위가 세월의 경륜을 꿰듯 말없이 멋스럽다. 주름에 쌓인 시름을 둘러 둥지를 턴 다람쥐들이 촐싹대며 깐깐한 텃새를 부린다. 약을 대로 약아빠진 눈초리로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먹잇감을 계산한다. 어느 줄에 설까.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나 짐승이나를 가리지 않고 줄을 잘 서야 되나보다. 그것이 보편적인 경쟁력일까. 난 왜 여태까지 줄 서는데 둔감했을까. 줄을 잘 선다는 건 노력의 결과일까. 아니면 동물적인 감각일까. 꼭 줄을 잘 서야만 할까. 오대산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낙영폭포까지 이르는 하산길이 가파르다. 무조건 줄을 잘 서야 된다는 속된 이기심을 움찔거리게 한다. 장마철이라 계곡에 수량이 풍부해서 폭포에 힘이 넘친다. 폭포의 중심에 서서 나를 씻고 싶어진다. 섣불리 덤비면 씻기는커녕 고꾸라질 텐데, 그래도 폭포의 힘을 느끼고 싶다. 그 속에서 작은 나를 찾고 싶다.

 

  만물상까지 이르는 하산 길은 계곡을 따라 대체로 평탄하게 이어진다. 군데군데 담과 소로 아기자기하게 다듬어져 있지만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줄을 잘 서면 편하게 살수 있을까. 잠시 내가 흔들린다. 다리가 풀리고 어깨가 처질 즈음 눈앞에 오만가지의 군상들이 도열하며 버티고 있다. 순간 긴장을 느낀다.

 

  아! 훌륭한 병사들이여 그대의 빈틈없는 경계를 누가 뚫으랴. 내가 여기에 이르는 수억 년 동안 오대산을 지키느라 노고가 많았네. 나의 격려에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충성스런 장병들이다. 소금강 만물상의 도열을 받으면 누구나 천하무적의 장수가 된다. 산행이 지칠 때쯤 만나는 힘찬 병사들의 기운에 덩달아 힘을 얻는다.

 

  만물상에서 얻은 기운으로 구룡폭포까지는 가볍게 다가설 수 있다. 소금강 산행의 백미는 구룡폭포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폭포의 물줄기는 무엇을 얻으려고 줄을 서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인생 살면서 얻을게 뭐 있나. 한줄기 폭포에 몸을 실으면 무상인 것을. 폭포 앞에 서면 몸 보다 먼저 내가 떠내려가는 것을.

 

  폭포의 물줄기들도 먼저 내려가려고 줄을 섰을까. 그들은 폭포를 지나면 강을 만나고 바다에 이를 텐데, 바다에 먼저 이른 물들은 더 빛날까. 아니면 더 빨리 썩을 수도 있을까. 폭포는 물줄기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대단한 힘을 가진 놈이다. 한발 앞서 줄을 선다는 것만이 경쟁력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한발 늦추는 것이 진정한 경쟁력일수도 있다.

 

  구룡폭포를 지나 무릉계에 이르면 소금강의 전설들이 쭉쭉 뻗은 금강송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좀 천천히 가면 어때. 그것이 자연인 것을. 그 전설 속에 나의 매듭도 하나 매달았다. 칠월의 오대산에 나를 담을 수 있었던 하루는 행복 하였다.

 

 

 

 

진고개 입구의 감자밭풍경

 

 

 

 

 

 

 

 

인간의 달콤한 향기에 약아빠진 노인봉 정상의 다람쥐

 

 

 

 

낙영폭포

 

 

오대산의 명물 금강송

 

 

 

 

 

 

 

 

 

만물상

 

 

 

 

 

 

구룡폭포

 

 

 

 

 

금강사

 

자귀나무꽃

 

 

 

벌 개미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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