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호에서 나를 건너다]
상고대 핀 의암호 상중도 갈대밭은 천하별미다. 찬 바람 부는 겨울이 닿으면 물안개가 곱게 피어오른다. 그러던 어느 날 기온이 뚝 떨어져 하얀 상고대가 섬 전체를 감싸면 별유천지(別有天地)가 된다. 그 환상적인 풍경은 신선이 노닌다는 무릉도원의 한 자락 같아,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날이면 누구라도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가까이 다가갈 방법을 알 수 없어 걸음을 돌려야 했던 기억이 있다. 사진에 담아도 성에 차지 않아 아쉬움을 삼키곤 했는데, 이제야 알겠다. 중도 나루터에서 카누를 타면 상중도 갈대밭으로 곧장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상고대 피는 계절에도 카누는 그곳으로 데려다줄까.
삼악산 산행 마치고 어딘가 모르게 허전해진 부족함을 채우려 카누를 타고 상중도에 닿았다. 처음 접해보는 카누는 의외로 빠르다. 제대로 배우고 익히면 제법 속도를 낼 수 있겠다. 노를 젓는 일도 생각보다는 수월하다. 섬에는 키가 고르지 않은 수목이 우쭐거리며 자라고 있고 가장자리에는 갈대밭이 자리 잡았다.
의암호는 남다른 인연이 있는 곳이다. 2023년, 춘천마라톤에 참가하여 10회 완주한 마라토너에게 시상하는 트로피를 받았다. 마라톤 풀코스 10회를 무사히 완주했으니 의암호는 각별한 애정이 있다. 달리다가 힘들면 의암호에 욕설을 뱉기도 하고, 완주했을 때는 주체하지 못할 기쁨을 쏟아 내기도 했던 곳. 의암호는 나에게 애증과 감사였으며, 손을 잡아 이끌어 주는 후견인이었다. 그동안 의암호 주변을 돌면서 섬을 바라보며 막연하게 동경했던 곳.
이제 의암호 한 복판에 카누 타고 들어가 달리기 하면서 힘들어했던 마라톤 주로를 바라보는 감회는 남다르다. 수면 가까이 카누에 앉아 바깥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바깥에서 호수 안쪽을 바라볼 때보다 훨씬 멀어 보인다. 착시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마음의 거리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바깥에서 안쪽을 바라볼 때는 중심이 좁아서 가까이 보이지만, 안에서 바깥으로 바라볼 때는 중심에서 주변 전체를 다 살펴야 하는 거리니까 더 멀어 보일 것이다.
의암호 한가운데서 삼악산을 바라보는 풍경도 이색적이다. 직접 산행하며 부대꼈던 삼악산은 가파르고 험했지만, 의암호에서 바라보는 삼악산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을 뽐낸다. 삼악산에서 내려보는 의암호는 제1 경이었는데, 의암호에서 삼악산을 바라보는 풍경도 그에 못지않다. 바라보는 자리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풍경이 달라진다. 자연이 그러하듯, 삶도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내보인다. 카누를 타고 늦가을의 의암호와 조우하는 것은 또 다른 감칠맛이다.
[일시] 2025년 11월 22일
[장소] 춘천 의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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