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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도봉산 다락능선

[채움과 비움]
 

성공하기 위해서 산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내 삶에서 궁구 했던 품격을 위해서 산에 오른다. 가을 산을 오르면서 사박사박 밟히는 낙엽 소리 리듬을 따라 채움과 비움의 경계를 고민한다. 성공의 결과는 채움이고, 품격은 비움에서 싹이 돋는다. 그러나 비움을 위한 산행조차 또 다른 채움을 바라는 마음과 맞닿으면 문득 혼란스러워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툭툭 털어내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 다녀올 수는 없을까.

봄에 싹 틔우고 무더운 여름을 거쳐 이제 단풍도 지쳐가는 늦가을이다. 세상을 다 덮을 기세로 무성하게 잎을 채워가던 도봉산도 말없이 비워내고 있다. 지난날의 성공이 의미 없음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제 품격을 갖추기로 한 것이다. 낙엽 다 떨어지고 나목인 채로 추운 겨울을 버텨야 한다. 비움의 시간이 얼핏 잔인하게 보일지라도 개의치 않고 꼿꼿이 자신을 내놓는다. 비우지 않고는 채울 수 없다는 진리를 이미 알고 있었으니 자연은 위대하다. 
 
성공을 위하여 과욕을 부리며 몸부림쳤던 지난 일들이 이제는 허공에 사라지는 듯 덧없다 잡히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었던 그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매달리며, 밤낮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일들이 무색하다. 수원 브라운관 공장 로 덕트 개보수공사 때, 막바지 마무리 공사에 문제가 생겨 사흘 밤낮 사투를 벌이며 죽음도 불사했던 그때가 새삼 떠오른다. 누가, 무엇이 나를 그 사지로 내몰았던가. 그때는 분명 알지 못할 사명감으로 부글부글 끓었는데, 지나고 보면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운데 작은 돌부리 하나 찼던 느낌만 남는다.
 
다행히 공사는 로 화입 전에 마무리할 수 있어서 성공적이었지만,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시간에 쫓겨 무리하게 심야작업을 강행한 결과 비용이 과다 지출되었다. 결국, 성공적인 공사 완수가 사업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당초 문제가 생겼던 것도 과욕이 원인이었다. 동일한 압력 조건에서 실행했어야 했는데. 간과하고 서둘러 채움만을 쫓았다. 그 어디쯤 잠깐의 비움의 시간을 갖지 못해서 쓰라린 실패의 뒷맛을 남겼다. 
 
단풍을 내려놓은 나무는 겨우내 온전히 자신을 비워내며 또 다른 생명을 준비할 것이다. 산을 내려오며 채워서 얻을 수 있는 성공보다는 비움으로서 얻을 수 있는 품격을 배운다. 언제나 그렇듯 채움보다는 비움을 닮아 아무일 없는 듯 묵묵히 우뚝 서 있는 산. 나도 그를 닮고 싶다.
 

[산행 일시] 2025년 11월 16일

[산행 경로] 도봉산역 - 광륜사 - 은석암 - 다락능선 - 포대능선 - Y계곡 - 마당바위 - 도봉 탐방지원센터(8.5km)

[산행 시간] 4시간 

신선대
포대능선
백운대(먼산)
자운봉
우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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