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과 막걸리]
무릎이 삐걱거려서 산행도 쉽지 않다. 그동안 무리하게 사용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유전적 요인이 더 크지 않을까. 평생 농사일을 하셨던 어머니도 무릎과 허리 통증에 늘 시달린다. 일은 많이 하셨지만 그렇다고 무릎만 유독 많이 쓴 것도 아니니, 타고난 체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치료를 받아도 잠시 통증이 가라앉을 뿐 근본적인 개선은 어렵다. 인공관절 수술을 고민해 보지만, 큰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일단 견뎌보자”라며 미루고 계신다.
나 역시 체격과 식성이 어머니를 닮았으니, 앞으로 무릎 때문에 고생할 가능성이 크다. 정형외과에서는 퇴행성 관절염이 진행 중이라 진단했다. 나이에 비하면 특별한 건 아니라지만, 가능하면 무릎을 아껴 쓰라고 한다. 반대로 다른 의사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굳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긴다며 적극적인 운동을 권한다.
운동을 줄이면 무릎은 조금 편해질지 몰라도, 활동을 좋아하는 내 성격상 운동 부족에서 오는 다른 문제를 어떻게 감당할지 막막하다. ‘나중을 위해 아껴 쓴다고 정말 아껴질까?’라는 의문도 든다. 지금은 열심히 운동해서 근육을 튼튼히 하면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는 변명을 앞세운다. 이러나저러나 명쾌한 해답은 없다. 다만 즐겁게 운동하다 보면, 의술이 더 발전한 어느 시점에 분명 나아질 길도 생기겠지 하는 희망에 기대 본다.
하산 후 막걸리 한 잔을 마시니 얼큰하게 취한다. 술기운이 돌면 아프던 무릎이 싹 사라지는 듯하다. 참 별일이다. 그래서 다들 산행 후 막걸리를 마시는 건가 싶다. 하지만 언젠가 막걸리를 과하게 마신 채 내려오다 헛발을 짚은 적이 있다. 자칫 큰일 날 뻔했다. 그 뒤로는 절대 조심하자 다짐했지만, 가끔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집에 가는 길이다. 땀 흘린 뒤 마신 시원한 막걸리가 온몸으로 퍼지면, 전철만 타면 깊은 졸음이 몰려온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도 종점까지 가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청계산 입구역에서 출발해 양재역에서 친구들과 헤어졌다. 신사역까지 가서 3호선으로 갈아탈 계획이었는데, 신사역 두 정거장 전인 논현역에서 잠시 의식을 차린 뒤 다시 깜빡 졸았다. 설핏 눈을 뜨니 웬 판교역이다. 깜짝 놀라 내리고 보니, 신사역 종점을 지나 반대편 종점인 광교행 열차로 갈아타졌는데도 나는 내리지 않은 채 그대로 판교역까지 가버린 것이다. 황당했지만, 그래도 광교역까지 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다시 신사행 전철을 탔다. 이번엔 졸지 않으려고 빈자리도 일부러 피했다.
등산복 차림에 막걸리 냄새, 땀냄새 풍기면서 구겨진 몰골로 졸고 있으면 볼상사나운 민폐다. 아내는 종종 타박한다. 그렇다고 산행 후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의 기쁨을 포기할 수도 없다. 술에 취해 지하철 쓸고 다니면서 종점을 오가는 일도 나이 들어서 할 일은 못된다. 방법이라면 취하지 않을 만큼, 졸지 않을 만큼 마셔야 된다는 것인데, 그 역시 쉽지 않다.
막걸리를 마시면 무릎 통증이 사라진다는 건 사실상 술을 마시기 위한 핑계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들에게 민망한 모습으로 늙어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은 막걸리 마시면 무릎이라도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마시되 적당히 마시며, 졸지 않을 정도로만 취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술 마시는 사람치고 이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사람이 또 있을까.
[산행 일시] 2025년 11월 23일
[산행 경로] 원터골 - 매봉 - 이수봉 - 옛골(8.5km)
[산행 시간] 4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