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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설악산 주전골

[주전골, 그리고 쇼팽의 피아노]

 

낙엽 따라 가을이 한 뼘 더 줄었다.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금세 꼬리를 감춘다. 놓칠세라 허겁지겁 쫓았다. 한국의 가을 풍경을 보고 싶다는 폴란드 친구들에게 어디가 좋을까 고민했다. 가볍게 트레킹 할 수 있고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설악산 주전골을 떠올렸다. 장시간 비행기 타고 서울에 도착해 피곤을 풀 겨를도 없이 시차도 불편한 친구들이 설악산까지 승용차로 이동했다. 지친 표정이 역력했지만, 긍정의 마인드로 무장한 그들의 당당함이 멋지다.

 

자연경관은 일기와 절기 맞추기가 쉽지 않아 내심 걱정했다. 설악산에 단풍이 들지 않았거나 지나갔으면 어쩌나. 주말에 비가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은근 걱정되기도 했다. 주전골 입구에 다가섰는데, 비 소식이 없어서 일단 다행이다. 단풍 절정 시기에 맞춰 주전골에는 걷기  힘들 만큼 사람들로 북적였다. 초입에 들어섰을 때, 단풍보다는 푸른 이파리들이 성성했다. 실망해도 어쩔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그들을 영접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1km 정도 깊이 들어가니 농익은 가을이 반긴다. 염려를 일시에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환하다. 푸른 소나무와 붉은 단풍이 걸러 낸 맑은 공기와 물고기가 살 수 없을 만큼 깨끗한 물에 마음이 비친다. 언제 그랬냐는 듯 푸석푸석했던 얼굴에 생기가 돋는다. 색동저고리를 걸치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기암은 기백이 넘친다. 연신 감탄을 자아내며 그들의 무사한 여행을 위하여 막걸리 잔에 염원을 따라 쭈욱 들이킨다. 호쾌한 웃음이 계곡을 따라 피아노 운율을 조율한다. 

 

주전골 끝까지 가지 않고 용소폭포에서 매듭을 짓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을을 배웅한다. 하산하는 길에 주전골 봉우리들이 구름에 싸여 동양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설악의 골짜기에서 신선을 만난 이색적인 경험에 흡족해했다. 함께한 우리 일행은 아쉬움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의 고국 폴란드에서 쇼팽의 피아노 선율에 서정을 담아 오랫동안 스며들기를 바란다. 

 

[산행 일시] 2025년 10월 25일

[산행 경로] 오색약수터 - 주전골 - 용소폭포 - 오색약수터(원점회귀) 6km

[산행 시간] 3시간

 

용소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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