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만나다]
마음껏 하늘을 나는 용을 만나고 싶었다. 그게 욕심이었다면 가만히 엎디어 세상 돌아가는 민심을 간섭하며 존재만으로도 폼 나는 용을 만나고 싶었다. 그는 중국 윈난성의 골격을 아우르며 자는 듯 엎드려 있는 옥룡이다. 그에게는 13개의 비늘이 돋아있다. 그중 가장 높이 솟은 비늘이 5,595미터 구체봉이다.
그를 만나러 가던 날, 자욱한 안개에 몸을 숨기고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저보다 기가 센 친구들이 덤비니까 두려웠을 거야. 스스로 기어 나오지 않으니 찾아갈 수밖에. 야크를 방목하는 목장이 있는 모우평까지 곤돌라를 타고 올라 큰기침으로 노크를 했다.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곰탕 같은 안개에 뒤덮인 해발 3,500미터 모우평에는 산양과 야크 떼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풀을 뜯고 있다. 고산 적응이 어려워 호흡이 가빠진 우리들은 산소통을 연신 흡입하며 호들갑을 떠는데, 인간이 나타나던지 용이 나타나던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달관한 그들의 모습에서 적잖은 존경심마저 느끼게 된다. 너희들의 능력과 자유를 경외하노라.
모우평에서 갖은 미끼로 유혹해도 꼼짝 않으니 좀 더 깊이 들어갈 수밖에. 산야목장까지 길을 이어갔다. 거기에도 그는 기척이 없다. 용이 없는 게 아닐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목장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허기를 달래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를 만나기 위해 더 올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해야 할 분기점이다. 기필코 용을 만나고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현지 산악 가이드를 앞세워 특공대를 결성하여 전진했다. 고도를 높일수록 호흡은 가빠지고 발걸음은 덫에 걸린 듯 무겁다. 용을 만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운삼 원시림 지나니 길 잃은 야크를 쫓던 목동이 잠시 비와 바람을 피하기 위해 얼기설기 나무를 걸치고 천이나 비닐로 감쌌던 흔적이 보인다. 여기가 설산소옥인가?
설산소옥 지나 이제나 저제나 용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고도를 높여가니 4,060미터 여신동에 이른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있는데, 산악가이드가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내린다. 비가 오고 길이 미끄러워 위험하니 오늘 산행은 여기서 마무리하겠단다. 목표지점인 4,310 미터에 위치한 설련 대협곡까지 고도 250미터를 남기고 하산하라니 말이 되는 소린가. 옥룡을 만나겠다고 몇 년, 몇 달을 벼르고 달래서 여기까지 왔는데, 승복할 수 없다고 버텼다. 가이드는 위험하니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고 연신 고개를 흔든다. 어쩔 수 없다. 산이 허락하는 만큼만 수용할 수밖에.
여신동에는 갖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나의 인생 최고봉인 4,060미터에서 이런 꼴을 만나다니 도저히 수치심을 용납할 수가 없다. 솔직히 우리나라의 산에도 쓰레기는 많지만, 이토록 흉물스럽게 개념 없이 널려있지는 않다. 나에게는 처녀봉인 신성한 여신동 봉우리를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작은 비닐봉지에 담을 요량으로 주섬주섬 쓰레기를 주우니까 산악가이드가 큰 비닐을 꺼내놓는다. 잘되었다 싶어 본격적으로 쓰레기를 주었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가이드도 나선다. 그렇게 시작된 쓰레기 청소는 함께했던 동료들이 동참하여 순식간에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인데, 그동안 흉물스럽게 손가락질받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버리고 우리들이 손가락질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가이드도 흐뭇했는지 두세 번 엄지 손가락을 힘차게 치켜든다. 솔직히 우리나라 산에서도 가끔 마음을 내보기는 했지만, 한 번도 실행에 옮긴 적 없는 청소였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향기가 돋는다. 벼르고 별렀던 옥룡설산에 와서 비록 옥룡의 헛기침 소리도 듣지 못하고 공주 같은 하얀 눈도 만나지 못했지만, 내 마음에는 그 보다 더 소중하고 멋진 용을 만났으니 아쉬움을 남길 이유가 없다. 이제는 우리나라 산에서도 용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설렌다. 산에 오를 때마다 용을 담을 수 있는 비닐봉지를 준비해야겠다. 큰 봉투에는 큰 용을 담고, 작은 봉투에는 작은 용을 담으면 된다. 어쩌면 이제부터 진정한 산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해진다. 용은 설렘을 부추기는 나의 선한 친구다.
[산행 일시] 2025년 9월 16일
[산행 경로] 모우평 - 산야목장 - 운삼 원시림 - 설산소옥 - 여신동 - 원점회귀(10.5km)
[산행 시간] 5시간 5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