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흐르다
지은이 : 최진석(북경대학교에서 ‘장자소’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 저서 : 인간이 그리는 무늬,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탁월한 사유의 시선 외 다수
발행처 : 소나무
발행일 : 2017년 8월 23일
페이지 : 311쪽
작가는 이미 잘 알려진 철학자다. 독자는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이라는 책을 통해 작가와 만난 적이 있다. 그동안 노자의 도덕경을 여러 권 읽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 이경숙의 ‘노자를 웃긴 남자’ 김정춘의 ‘도덕경’ 등 읽어본 결과 번역이 엉망이거나, 너무 희화화되었거나,, 너무 어렵게 번역되는 등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최진석의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이라는 책을 만났는데, 그동안의 체기를 단번에 해결할 만큼 시원했던 기억이 있어서, 스스럼없이 이 책을 들었다.
이 책은 작가의 산문집으로서 그동안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 편집했다고 출간 의도를 피력했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서정적인 산문이 아니라 작가의 주장이 강하게 느껴지는 칼럼 형태의 글들이 많다. 아무튼, 독후감을 통하여 작가는 자신의 말대로 제대로 된, 경계인인가 살펴보는 것은, 책을 읽는 관점 포인트라 할 것이다. 소제목 전체를 모두 언급하기에는 독후감으로서의 다소 지루한 면이 있으므로 경계인으로서의 수긍할 수 있는 부분과 반론할 수 있는 부분 위주로 발췌하여 독자의 감상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서문에서 [나는 경계에 있을 때만 오롯이 ‘나’다. 경계에 서지 않는 한, 한쪽의 수호자일 뿐이다. 정해진 틀을 지키는 문지기 개다. 경계에 서야 비로소 변화와 함께할 수 있다. 변화는 경계의 연속적 중첩이기 때문이다. ‘진짜 나(眞我)’는 상(相)에 짓눌리지 않는 존재다. 이러면 부처가 되는 필요조건은 일단 채워진다. 동네 부처라도 될 요량이면 경계의 흐름 속으로 비집고 스며들어야 한다. 경계에 서 있으면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미래로 몸이 기운다. 미래가 열리지 않는 것을 한탄하지 마라. 내가 그저 한쪽을 지키는 성실한 투사임을 한탄해라.]
작가는 경계에 서 있어야, 미래를 열 수 있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작가가 말하는 경계의 의미는 중용(中庸)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는 말 같기도 하다. 말이 쉬워서 중용이지 쉽지 않은 경지라고 생각한다. 범인이 과연 중용의 도(道)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 작가가 말하는 경계는 엄밀히 말해서 중용과는 조금은 다른 의도이므로 중용의 도를 실천하고자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이다.
고향 나의 까닭
[‘타향’에서 나는 익명성 속에 숨어 지내는 ‘감춰진 존재’다. (중략) 진보적인 사람 혹은 보수적인 사람, 좌파 혹은 우파, 보수꼴통 혹은 종북 좌빨 등 익명성의 지배권은 철저히 인공적으로 조작된 이념이나 신념의 차지다. 따라서 각자의 진짜 모습보다는 정해진 이념이나 신념에 의해 조정되거나 굴복되는 사람이라면 모두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내가 ‘나’로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일원으로 존재해 버리면, 그것은 모두 타향살이다.]
고향에서는 자신을 익명성 화할 수 없으므로 온전히 자신의 민낯을 내놓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타향에서는 자신을 감출 수 있으므로 자신의 올곧은 신념보다는 사회가 강요하는 이념이나 신념에 휘둘리게 됨을 강조한다. 고향에서의 삶과 타향에서의 삶 중, 어떤 삶이 경계인의 삶에 가까울까.
불언(不言)의 가르침
[힘센 학생이 자기보다 약한 누군가를 때렸다. 신부님은 때린 학생을 불러다 놓고 교훈적인 가르침을 주지 않으시고, “너 지금 너하고 똑같은 다른 사람을, 때렸어”. 그저 발생한 일이나 행한 행위를 사실적으로 알려 주실 뿐이었다. 교복의 호크를 풀고 다니는 학생을 마주치면 신부님은 “호크 풀어졌다”는 한마디만 하실 뿐이었다]
작가가 미션스쿨인 중학교 다닐 때 신부님의 일화를 소개한 글이다. 신부님께서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고치라고 가르쳐서 교정하게 되면 모범적인 태도를 회복한 공이 신부님에게 돌아간다. 그보다는 발생한 사실만 말해줌으로써 학생 스스로 잘못된 행위를 교정하는 주체가 되면 모범적인 태도를 회복한 공이 학생 자신에게 간다.
이는 노자의 핵심사상인 무위(無爲)적 행위의 한 유형으로서 ‘불언지교(不言之敎)’가 행해지는 맥락 속에서 행위자나 피교육자가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로 등장한다. 우리의 교육 방향이 이렇게 정립되었으면 좋겠다. 본 장에서 신부님의 가르침은 경계인의 올바른 자세라 할 것이다.
우물에 물이 차오를 때
[많은 진보적 노력이 왜 혁명으로 완수되기 어려운가? 어느 시점에서 진보가 ‘뚜껑’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시각과 노력이 일정 부분 변혁을 이루다가, 어느 단계에서는 바로 ‘뚜껑’이 되어서 스스로 활동을 덮고 제한하기 때문이다. ‘완장’이 되어 버린다고 해도 말이 될까?]
샘물을 찾아 우물을 만들면 신선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데, 거기에 뚜껑을 덮어버리게 되면 다시 썩어버릴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정치인으로 권좌에 오른 뒤, 국가 경영인으로 변신하지 못한 실패한 대통령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환경에 따라 스스로 변하지 못하는 혁명가는 결국 반항아밖에 될 수 없음을 꼬집는다. 사고가 한 곳에 고착된 반항아는 경계인일 수 없다.
보는 사람
한민복 시인의 ‘섬’이라는 시를 인용한다.
[“물 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가장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기존의 일반적인 시각과는 다르게 한민복 시인을 통하여 우리는 가장 낮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길이 되어 버리는 울타리를 두른 새로운 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창조다. 작가가 추구하는 참 경계인의 자세다.
약 오르면 진다
[어떤 학생이 시험 중에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되었다. 진실하게 존재하는 학생이라면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것이다. 잘못을 자신이 온전하게 감당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대행자로 존재하며 스스로 분열되어 있으면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도 그랬는데, 왜 자기만 잡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삼는 데서부터 진실은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과의 비료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한, 진실은 흔들린다. 남보다 좀 더 나은 것이, 핵심은 아니다. 내가 나에게 자랑스러운가 가 진짜 핵심이다.]
현재 한국의 정치 리더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어서 발췌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과 비교해서 빠져나가려는 행태는 진실과는 거리가 먼 가식의 정수다.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사회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다. 작가가 말하는 경계인이 절대로 될 수 없는 수구 꼴통이며, 악의 근원이다.
나를 만나는 일
수레바퀴를 깎는 윤관이라는 장인이, 성인의 책을 읽고 있는 제나라 환공에게, ”성인의 찌꺼기를 읽고 계시군요”라며 핀잔을 했다. 이에 환공은 그 까닭을 온전히 말하지 못하면 목을 베어버리겠다며 엄포를 놨다.
[“제가 수레바퀴 깎는 일만 해온 사람이니까 이 일을 하면서 얻은 경험으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너무 느슨하게 천천히 깎으면 수레바퀴가 헐거워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수레바퀴를 너무 급하게 빡빡하게 깎으면 수레바퀴가 뻑뻑해서 문제가 있습니다. 급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게 깎아야 하는데, 제대로 깎는 일은 제가 손으로 익혀서 마음에 담아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제 자식에게도 잘 전해 지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손으로 경험해서 얻은 이것은 마음에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로는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이것을 알려 주려고 해도 전할 길이 없습니다.”]
제 환공이 아무리 성인의 이야기를 읽는다고 해도 내 마음이 지켜지지 않으면 이야기 속의 뜻을 그대로 이해하기는 어렵고, 또 언어를 통한 소통과 전달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이는 책 읽기를 통해서 자기 확장성을 발견하고, 궁극적으로는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어야 스스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래야 만이 나에게 구체적인 행복, 구체적인 자유, 구체적인 생기를 선사할 것이다.
경계에 선 불안을 견딜 수 있는가
[경계에 서 있는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사람은 강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그 사람의 폭과 능력은 딱 거기에서 멈춘다. 한쪽을 선택한 후, 그 세계에 자신만의 선한 왕국을 건설하고 그것을 세계의 전부로 착각한다. 한쪽을 선택하여 거기에 빠지면 바로 그 프레임에 갇혀 굳어버린다. 이제 세계를 참과 거짓, 선과 악으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자신의 관점에 맞는 것만, 참이고 선이다. 그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고 악이다. 이 관점이 바로 이념이고 신념이고 가치관이다.]
이 단원은 작가가 책 제목을 정한 경계인의 기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다시 한번 강조한 단락이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
[“나는 말 잔 등에 올라탄 채 천하를 얻었다. 뭐가 부족해서 ‘시경’이니 ‘서경’이니 하는 말 따위를 들어야 하느냐?”라고 ‘육가’를 힐난했다. 그러자 육가는 “폐하는 말 등에서 천하를 얻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말 등에 올라탄 채로 천하를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사마천은 유방이 육가의 말에 “언짢아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라고.” 전한다.]
천하를 얻어 성공한 유방이 국가의 경영자로 변신하게 된 동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부끄러워하고, 기존의 틀에 갇혀있지 않고 변화를 모색하여 성공의 결실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유방은 경계에서 기존의 기억을 과감히 탈피하고 창조적 지배자로 탈바꿈하여 경계인의 모범이 된 것이다.
투명한 벽
작가는 중국의 선전대 국학연구소에서 ‘경전과 경학 그리고 유가 사상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에 들렀다가 그들의 스케일과 개혁개방을 선도해 온 선전의 발전상과 그들의 인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에 대하여 부러워하는 내용이다.
[부럽고 두려운 마음을 가진 채 귀국길에 올랐다. 선전공항은 공항이 아니라 예술품이었다. 그런 수준의 구조물을 들락거리며 느끼는 승화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낼 사회는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공항 내부에 세워진 구호에 그 상승의 기운이 충분히 드러났다. ‘문화 중국, 창의선전,’ 놀람은 여기서 마무리됐고 서울로 머리를 돌린 나의, 생각은 수만 갈래로 복잡해졌다.]
이 책을 펴낸 지가 2017년이니까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작가는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양철학에 능통해서 그런지 이 단락에서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적인 사고를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의 잠재된 능력과 무한한 인문학적 사고에 대하여 마냥 부러워하며, 미래의 중국은 고대의 중화 국을 다시 재현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독자가 묻는다. 2025년 현재, 중국은 과연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미래가 창창할 것이라고 믿는가. 오늘의 중국은 엄청난 경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들은 아직도 경제가 성장 중이지만, 기실 그 성장이라고 내놓은 지표는 자신들의 허점을 감추기 위한 모략이며 허위로 가득하다. 년 GDP 5% 성장이라면 인민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야 하지만, 현재 중국 인민들은 수심이 가득하고 주요 도심에는 노숙자가 넘쳐난다. 그들의 성장은 인민 삶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국가 정책사업으로 무자비하게 투자해서 얻은 결과이다. 전기자동차, 태양광 패널,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 국가의 전력을 쏟았지만, 이 물건들을 팔지 못하니까 재고만 쌓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만들어 낸다. 만들어 내는 만큼 인민의 삶은 피폐해질 것이고 일정 기간 GDP 성장은 유지될 것이다. 공산 일당 독재니까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 단락에서 작가는 경계인의 위치가 흔들린다. 대학자로서 중국의 8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 일반적으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중국의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인식했다는 오류를 범했다. 이 글을 쓸 당시에도 중국은 일당 독재였으며, 이미 시진핑의 독재에 의한 폐단이 인민들 사이에서 문제점이 잉태되고 있었던 것을, 작가는 인식하지 못했다. 아마 작가는 중국은 문화의 중심이며 세계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사대주의적인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닐까. 편견을 갖지 않는 게 경계인이라고 강조한 작가였음을 인지하면, 경계인의 시각과 관점에서 현재의 문제점을 꿰뚫어 직시할 수 있는 시선을 잃었다는 것은 흔들리는 경계인이다.
혁명을 꿈꿀 때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 대해 일갈하고 있다. ‘정치’는 간곳없고 ‘정치 공학’만 남아 정치인들끼리 이전투구로 국익은 안중에 없고 기능주의에 빠진 정치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건국화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라는 ‘명’을 완수한 이후 새로운 ‘명’을 설정하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벽 앞에 서 있다. 새로운 ‘명’으로 무장하여 벽을 넘지 못하면, 과거의 혁명 깃발은 모두 완장으로 바뀌고, 결국, 이전투구에 빠지게 된다. 건국도 산업화도 민주화도 이제는 모두 완장이다. 완장들은 자기들이 해왔던 말만 계속, 해대며 핏대를 세운다. 시대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논리만 계속 늘어놓는다. 거의 모든, 혁명가들은 혁명가로 남지 못하고 반항아로 전락하는 이유다. 그래서 정치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금은 바로 혁명을 꿈꿀 때다.]
일견 작가의 의견에 공감한다. 건국화와 산업화를 이뤘던 세대들은 이제 그 소임을 다하고 현실에서 물러났다. 그들의 공은 후 세대에게 넘겨졌으니 이 땅을 딛고 서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다만, 민주화를 이뤘던 세대들은 아직 정치 현실에 남아 꼰대 짓을 하며 우리 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가에 대해 아직 받아야 할 보상이 남았다고 악을 써 댄다. 그들이 민주화를 요구했을 때, 정치적인 권력이나 금전적인 보상을 바랐단 말인가. 그랬다면 그들의 민주화는 위선이다. 작가 말대로 완장을 찬 것이다. 민주화를 요구했던 그들은 경계인이 되기를 거부하며 과거에 갇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집착하고 있다. 급기야 그들은 이제 독재를 꿈꾸고 있다. 진짜 제대로 된 민주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와 벌이는 전면적 투쟁
인간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은 근본 동인은 환경에 적응하며 스스로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정의한다.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반성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은 정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앞이 꽉 막혀 답답한 현실을 개탄하며, 정치인들의 반성 없이는 우리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박근혜 국정농단’은 내용 자체의 수준이 너무 낮고 천박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까 두렵다. 참 창피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서 창피한 것보다, 더한 창피가 있다. 바로 당사자들의 반성이 없는 것이다. 어차피 대통령은 반성 능력 자체가 없어 보이지만, 이화여대의 그 많은 교수들, 청와대의 그 많은 관료들, 새누리당의 그 많은 정치꾼들 가운데 어떻게 반성하는 사람 하나 없단 말인가. 어떻게 스스로 물러나는 사람 하나 없단 말인가. 이것이 우리의 민낯이다. 정말 큰 문제고 더 창피한 일이다.]
작가는 이른바 ‘박근혜 국정농단’을 언급한다. 여기서 독자는 작가의 현실 정치 인식에 편협된 시각을 발견한다. 작가는 최순실이라는 일개 아줌마에 의하여 무능한 박근혜가 농락당했다고 단정해버린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자신이 기준을 정한 경계인의 자격 미달이다. 경계인은 편견과 자신의 고착화된 사고를 개선할 여지가 없음이라 했으니 작가는 그 범주에 포함된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은 무능한가?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4년 동안 무수한 업적을 남겼다.
1. 통진당 해산 및 이석기 구속(정당 해산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2. 전교조 법 외 노조 전환
3. 개성공단 폐쇄
4. 사드배치
5. 북한인권법 통과 및 북한인권센터 설립
6. 김정은 참수부대 창설
7. 방산 비리 척결
8. 원전 비리 척결
9. 공무원 연금개혁(그동안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아무도 손 못 댐)
10. 김영란법
11. 종교인 과세
12. 전두환 추징금 환수
13. 성범죄 처벌법 개정 및 성범죄 강력처벌
14. 코레일 개혁 역사상 첫 흑자 전환
15. 한국전력 흑자 전환
16. 불법 중국어선에 강력처벌 함포 사격(그동안 중국 눈치 보느라 이행하지 못했음)
17. 좌편향 역사교과서 국정화
18. 16년 만의 대북확성기 재개
19. 북한이 전쟁 위협 시, 선제 타격 가능 전환
20. 강력 대북 제재안 UN안보리 통과
21. 전작권 환수 무기한 연기
22. 사상 최초 평양에 태극기 게양 애국가 연주
23.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금 대폭 인상
24. 6.25 여성의 용병 65년 만의 국가유공자 지정
25. 15년 만의 테러방지법 통과
26. 역대 최초 일본의 조선인 강제징용 인정
27. 위안부 문제 사과받아내고 배상금 최종 합의(그동안 계속 미루어왔음)
28. 물가상승률, 지니계수, 앵겔지수 역대 최저
29. 국제신용등급 사상 처음으로 일본 앞서
30. 역대 대통령 중 공약이행률 최고
31. 고액상습체납자로부터 1조 4,028억 원 세금 징수
32. 주가 시가총액 세계 10위, 수출규모 세계 6위 달성
33. 아시아 최초 한미 우주협력 협정 체결
34. 6 25 때 미국으로 밀반출된 대한제국 옥쇄 5점 반환받음.
35. 이어도 방공식별구역 설정 등
- 업적 중에는 역대 대통령들이 표 의식해서 미루고 미뤄 곪아 터진 일들을 정리한 것들이
많았음은 인지의 사실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대통령 업 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오직 국가를 위해서 과감하게 실행했다. 그래서 공무원, 노동조 합, 종북이념자 등 정치적 적을 많이 만들게 되었음.
경제, 안보, 외교 등 전 분야에 걸쳐 업적을 이뤘는데, 이 모든, 일들을 일개 아줌마에게 휘둘려서 실행했다면, 그 일개 아줌마는 보통 아줌마가 아니라는 반증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의 수준을 논하기 전에 왜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탄핵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탄핵의 볼 쏘시개가 되었던 태블릿 PC가 사건의 증거물에서 제외했다는 것은, 그것이 가짜라는 의미다. 결국, 최순실 아줌마가 태블릿 PC로 박근혜 대통령을 조종했다는 선동 또한, 가짜 보도다. 최순실 씨가 300조 숨겨뒀다고 설레발쳤던 안민석 전 국회의원은 얼마 전에 패소해서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것도, 정윤회와 롯데 호텔에서 밀회했다는 것도, 청와대에서 성형했다는 것 등, 그동안 탄핵의 불을 지피기 위해 사용되었던 모든 언론과 사법부의 행태가 거짓이고 위선이었음이 밝혀진 상태다.
작가는 당시에 권력을 장악한 세력과 언론이 선동한 가짜 뉴스를 곧이곧대로 이해하고 동조했다는 부분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없다.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작가의 현실 인식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하여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런 정도의 사고와 직관력으로 어떻게 경계인의 기준을 제시할 생각까지 했는지, 그 용기가 가상하다. 그리고 작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반성할 능력도 없다고 폄훼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단정적인 결론과 편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몇 번이고 사과했는데, 작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예 들으려고 귀를 열지도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편견에 사로잡혀 경계인의 위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낯설고 깜짝 놀라는 그 순간 시작되는 것들
한 청년이 간담회에서 정부 관료에게 “청년들이 벤처나 스타트-업 등으로 일컫는 창업을 하다가 실패했을 때, 국가가 어떻게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며, 그 안전장치가 준비되어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벤처라는 말 자체가 모험이다. 모험을 좀 풀어보면 “위험을 무릅쓴다”는 뜻이다. 창업이 매우 도전적인 일인 것은 위험을 무릅써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안전장치를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모험도 아니다. ‘안전’을 의식하면서도 가능한 ‘모험’이 있을까? ‘안전을 염두에 둔 ’ 도전‘이 도전일까?]
이 대목에서 작가는 청년들의 나약함을 안타까워한다. 안전한 공기업이나 대기업만을 쫓는 청년들의 천편일률적인 직업선택에 대하여 적잖이 걱정이 많다. 요즘 청년들에게 배짱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는 청년들에게 배짱이 모자란 탓이다. 배짱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용기를 일컫는다. 이를 거뜬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사유가 가능해야 그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개척하는 용기를 배양하기 위한 철학적 사고는 경계인의 기본 덕목이다.
[맺음말]
발전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의 틀에 안주하거나 현실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다. 인간의 존재 능력은 혁신에서 비롯됨을 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경계인의 자세다. 올바른 경계인의 자세를 견지할 때만이 어떤 변화에도 굳건히 대처해 나갈 수 있다.
작가는 책에서 올바른 경계인의 자세에 대하여 많은 예시를 게재했다. 대부분 수긍하는 바이다. 다만, 명망 있는 철학자의 시선에서 현실 정치에 대한 견해는 좀 거리를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현실 정치에 깊이 관여하게 되면 자신이 그동안 견지해 오던 주장과 철학이 부딪히면서 에러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동양철학 분야에 나름의 일가를 이룬 학자가 섣불리 구설에 휘말리거나 자잘한 부분에까지 간섭을 받게 되면 그동안의 업적이 자칫 오염될 수 있다. 수많은 연구 업적과 많은 저서를 통하여 구축한 자신만의 세계를 더욱 굳건히 하여 철학이 빈곤한 사람들에게 비타민 같은 에너지를 많이 보급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튼, 본 저서를 통하여 독자는 경계인의 진취적인 입장을 공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수구적인 인격보다는 경계인의 인격을 배우는 계기로 삼을 수 있겠다. 청년의 바른 자세는 경계인이다. 나도 경계에 서면 청년이 된다.
202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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