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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書評

[독후감]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부제]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지은이 : 니코스 카잔자키스
(저서) 영혼의 자서전, 최후의 유혹, 미할리스 대장, 오디세이아 등
 
옮긴이 : 유재원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그리스 아테네 대학교 박사 학위
한양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역임
(저서) 데모크라티아, 유재원의 그리스 신화, 터키 1만 년의 시간여행 등
 
출판사 : 문학과 지성
페이지 : 587쪽
발행일 : 2018년 5월 25일
 
작가는 크레타로 가는 배 안에서 알렉시스 조르바를 처음 만난다. 첫 만남부터 그에게 알지 못할 끌림이 있었다.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작가 카잔자키스가 조르바를 만나 함께 생활하면서 그가 살아가는 철학과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미묘한 충돌과 주고받는 대화를 일깨워 쓴 자전적 소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조르바는 광부 일을 전문적으로 한 경험이 있으며, 산투리를 수준급으로 연주하는 실력을 갖췄다. 그런 그가 그리스의 섬 크레타로 가는 배 안에서 카잔자키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용건은 자신과 함께 크레타에 동행하자는 것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그의 요구에 관심이 쏠려 이런저런 대화했었는데, 함께 갈 건지 말 건지 결정하라고 그가 독촉했다. 카잔자키스는 조르바에게 함께 할 것을, 승낙했다. 명분은 크레타에 갈탄광산이 하나 있는데, 거기 광부들을 관리해 달라는 조건이었다.
 
크레타로 가는 배 안에서 비를 만났다.
[경계선들이 희미해지고 낡을 대로 낡은 배들의 돛대에서 새싹과 포도 덩굴이 돋아난다. 진실로 이곳 그리스에는 부족함이 기적을 만들었다. 점심때쯤 비가 그쳤다. 시원하게 목욕을 마친 부드러운 태양이 구름을 헤집고 사랑하는 바다와 대지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 카잔자키스는 사물과 현상에 대하여 은유적인 표현력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비가 그친 현상에 대하여 ‘시원하게 목욕을 마친 부드러운 태양’이라는 표현을 접하는 순간 독자는 그의 감성에 충분히 몰입한다.
 
크레타에 도착하여 거처를 잡자마자 조르바는 그새 현지 마담 오르탕스의 마음을 얻어 연애를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크레타의 자연은 군더더기가 없고 간결하며, 잘 다듬은 강렬하고도 절제된 훌륭한 산문이다. 크레타는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본질을 드러낸다. 어떤 장난도 치지 않고, 어떤 속임수도 쓰기를 거부하며, 장광설도 늘어놓지 않고, 남성 다운 엄격함을 가지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크레타의 준엄한 선들 사이에서 예기치 못한 섬세한 감수성과 아늑함이 모습을 드러낸다. 움푹 파여 바람도 못 미치는 계곡에서는 레몬과 오렌지 향이 퍼지고, 그 너머로 드넓은 바다에서는 끊임없는 시가 흘러나온다. “크레타, 아, 크레타여....” 나는 중얼거렸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 카잔자키스의 크레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명문장이다. 그에게 크레타는 산문이고 시였다. 그리고 심장 두근거리는 사랑이었다.
 
조르바, 오르탕스와 함께 식사를 곁들어 포도주를 마셨다. 술에 취한 오르탕스는 자신이 잡스러운 술집 여자 출신이 아니라 아티스였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크레타를 지키는 파수꾼이었음을 자부한다.
[“저는 ‘쩨독’ 한 사람을 사랑했어요. 크레타는 다시 ‘핵명’을 일으켰고 함대들이 수다만에 모여들었죠. 며칠 뒤에 나도 도착했죠. 대단했죠. 당신들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에서 온 네 명의 ‘쩨독’‘쩨독’ 들을 봤어야 하는데..., 온통 황금으로 장식하고 에나멜 구두에 모자에는 깃털을 단 모습들을 봤어야 하는데...., 수탉들 같았죠. 70에서 90킬로그램 나가는 거구의 수탉들이었죠. 그들이 나라를 망쳐놓았어요]
- 오르탕스는 제독들에게 크레타를 폭격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고 고백하면서 그들, 제독들과 가슴을 맞대고 성적 취향을 잘 맞     춰주면서 크레타를 지키는데, 일조했다고 자랑했다. 주거니 받거니 술에 취했을 때, 조르바는 카잔자키스에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    다.
[대장, 이 여자 사타구니에 불이 붙었어요. 이제 빨리 자리를 뜨세요.]
 
조르바는 갈탄광산에서 갈탄 광맥을 발견하고 기뻐하다가 며칠 뒤 광맥이 사라지면 벌렁 누워 하늘을 향해, 주먹질해 댔다. 그의 일상은 광산 일에 푹 빠져있었다. 광산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조르바는 카잔자키스가 별 간섭도 하지 않는데, 자격지심이 있어서인지 변명처럼 열을 올리곤 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무도 안 믿어요. 오직 조르바만 믿어요. 조르바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절대로, 정말 절대로 더 낫지 않죠! 그놈도 짐승이에요. 하지만 내가 조르바를 믿는 까닭은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놈이기 때문이죠. 나는 오직 그놈만을 잘 알 뿐, 다른 것들은 모두 헛것이에요. 내가 죽는 순간 모든 것들도 죽죠. 조르바의 세계전체가 바닥으로 사라지죠!]
- 이 대목에서 조르바의 성정이 엿보인다. 그는 다소 다혈질적이지만, 책임감이 강한 편이다.
 
비용은 자꾸 들어가는데 생산이 지지부진한 갈탄광산은 조급해졌다. 조르바는 내심 부담을 떨쳐 낼 길이 없어 카잔자키스에게 마음을 떠보았다. 카잔자키스는 처음부터 갈탄을 생산해서 떼돈 벌 목적으로 덤빈 게 아니라고 조르바에게 말했다. 조르바는 그 말에 힘을 얻어 부담감을 일부 떨칠 수 있었으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으로 광산에 필요한 갱목 나무를 인력으로 나르지 말고 케이블카를 설치하자고 제의했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더 많은 나무를 운반할 수 있으므로 나무 기둥, 대들보, 널빤지 등 부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카잔자키스는 동의했다.
[조르바는 아주 질 좋은 광맥 하나를 발견했다. 석회분도 많지 않고 습기도 적은, 열량이 풍부한 갈탄 광맥이었다. 그는 날아갈 꿈을 꾸었다. 그래서 밤새도록 잠도 안 자고 케이블 모형을 만들어 실험을 계속했다. 적당한 기울기를 찾아 목재들이 조르바의 말대로 천사들이 옮기는 것처럼 천천히, 부드럽게 미끄러져 내려오도록 해야 했다]
- 케이블카 설치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어서 기울기를 찾는데 골몰하고 있던 조르바가 비 와서 쉬는 날, 지난 시절 자신을 거쳐 간    여자들을 떠올리며 카잔자키스에게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대장, 웃지 마슈! 한 여자가 혼자 잔다면, 그건 우리 남자 모두의 책임이에요.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하느님의 심판장에서, 다 털어놓아야 해요. 내가 이미 말했듯이 하느님은 스펀지로 인간의 모든 죄는 용서하지만, 그 죄만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요. 대장, 한 여자랑 잘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놈은 저주를 받아요. 그리고 한 남자랑 잘 수 있었는데도 자지 않은 년도 마찬가지고요. 터키인 호자가 내게 한 말을 기억하시라고요 “]
- 조르바의 여성 편력을 피력한 대목이다. 조르바는 자신이 어디에 구속되거나 간섭을 받고는 살지 못한다. 다소 방탕하고 방랑기 많    은 성격의 소유자다. 그의 여성관을 표현한 이 대목은 그의 거침없는 방탕한 성격을 잘 표현했다.
 
갈탄광산에 석연치 않은 일이 생겼다. 질 좋은 광맥 하나를 뚫었는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갱도 천정에서 물이 새어 나와 진흙탕이 되었다. 한순간 조르바가 갑자기 일을 멈추고 광부들에게 눈짓하고 귀를 쫑긋 세우니 몸속 깊숙이 자리한 정맥의 핏줄들이 갈라지듯 탄광이 갈라지는 것을 직감했다. 낌새가 좋지 않아 갱도를 안정시키기 위해 갱목을 받치려고 망치를 들고 사투를 벌였다.
[갑자기 조르바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귀를 갱도 벽에 바짝 붙였다. 나는 아세틸렌 램프 빛 아래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그의 벌어진 입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조르바? “ 내가 소리쳤다. 바로 그 순간에 우리들 머리 위에서 갱도의 천장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피하세요, 피해요! “ 조르바가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리는 모두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우리가 입구 쪽 첫 번째 갱목 근처에 도착하기도 전에 머리 위에서 두 번째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훨씬 크게 들려왔다. 조르바는 그 순간 굵은 갱목 하나를 들어 올려서는 느슨해진 갱목골조에 버팀목으로 박아 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몇 초 동안만이라도 천장을 지탱해 주어 우리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서 나가세요! “!“ 조르바의 목소리는 땅속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듯, 너무 약해서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흔히 비겁함에 사로잡히듯 우리는 모두 조르바는 신경도 안 쓰고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몇 초 후,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갱도 안쪽으로 다시 들어갔다. ”조르바! 조르바! “ 나는 소리쳤다]
- 갱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조르바는 극도의 긴장감을 극복하며 침착하게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조르바는 갱도를 나와서  배고    프다고 너스레를 떨며 광부들을 위로한다. 조르바는 대담성과 영웅적인 심리를 갖췄다고 이해된다. 이 대목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    기보다는 소설의 극적인 재미를 위하여 작가가 창작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가 충분히 흥미를 잃지 않게 여기까지 끌고 오    는데, 작가는 성공했다.
 
그러던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카잔자키스에게 잠시 한눈을 판 여자가 나타났다. 조르바가 젊은 카잔자키스에게 연애를 종용했으나, 끝내 그런 일은 없었다. 카잔자키스가 준비했던 자금은 거의 바닥이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고 마음은 조급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조르바는 케이블카의 기울기를 찾아냈다.
[”내일 아침 일찍 굵은 철사 케이블, 도르래, 볼 베어링, 못, 갈고리 등 필요한 자재들을 사러 카스트로로 가야 해요. 새처럼 날아갔다가 재빨리 돌아올 거요 “ ”잘 다녀오세요! “! “ 내가 소리쳤다. ”사흘요, 사흘! 듣고 있어요? 더 이상은 안 돼요. “대장, 걱정 마슈! 곧 다시 봅시다! 조르바가 그렇게 소리치고는 올리브 숲 사이로 사라졌다. 함께 배웅 나왔던 마담 오르탕스는 계속 울었다]
- 케이블카 설치 재료를 구매하러 떠났던 조르바는 사흘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엿새가 지나서야 조르바가 카스토로에서 장문      의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의 요점은 카스토로에 오자마자 저녁이 되어 술집에 들렀는데, 거기에서 호기 있게 돈을 펑펑 써버렸다      는 것이다. 객기를 보고 환장하는 헤픈 계집들을 관리하는 조르바만의 스킬이다.
 
카잔자키스는 조르바를 기다리며 갈탄광 앞쪽 해안이 보이는 지점에서 오두막에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조르바가 왔구나’ 생각하며 기뻤지만,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조르바를 야단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중한 임무를 완수하라고 보냈더니, 술집 여가수와 뒹굴면서 내 돈을 낭비하고 열흘씩이나 늑장을 부렸으니 따끔하게 혼내려고 마음먹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화난 척 만 했다.
[”케이블 줄은요? “? “ 내가 물었다. ”그리고 다른 연장들은요? “ ”모두 다 챙겨 가지고 왔죠, 걱정하지 마슈, 꿩 먹고 알 먹고, 다 했죠. 공중케이블카, 룰라, 부불리나, 내가 모두 다 해내었어요,, 대장“]
- 조르바의 호탕한 성격과 카잔자키스의 소심한 성격이 잘 대비되는 대목이다. 소설 구성상 이런 극적인 대비가 재미를 더하는데 적    정한 기법이다.
 
조르바와 욕정을 불태웠던 마담 오르탕스의 불꽃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녀는 조르바와의 결혼을 진정으로 원했다. 그녀는 정숙하고 수다스러운 가정주부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랐던 것이다.
[마담 오르탕스가 조르바에게 다가가 무릎을 잡았다. ”왜 결혼식 화환은 안 가져오는 거예요? “? “ 그녀가 애절하게 물었다. ”왜 결혼식 화환은 안 가져오는 거예요, 조르바?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자, 이제 약혼식은 끝났어요. 내년에도 계속 행운이 있기를! 조르바 부인, 이리 오세요. 내가 당신 생애의 첫 번째 명예로운 키스를 당신께 하리다! 하지만, 마담 오르탕스는 바닥에 쓰러져 조르바의 발을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조르바는 동정심으로 얼굴이 빨개지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나도 결혼할 거야, 꼭 할 거야! 그래서 애를 낳을 거야! “! “ 평생 동안 그녀의 머리는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녀는 늘 한숨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고통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친 항해에 지쳐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지금, 조금 늦기는 했지만,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항구에 도착했다.]
- 조르바는 그녀의 존재가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오르탕스가 조르바와 결혼을 격하게 원      할수록 조르바에게는 오히려 부담되었다. 그녀의 촛불은 이미 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한다 해도 지극히 형식적인 이벤트      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마담 오르탕스가 마치 뭔가에 놀란 듯 눈을 뜨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세상은 흐릿해져서 누가 누구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장미 장식 모자를 들고 있는 조르바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의 주의는 어둠으로 덮여 있었고, 푸른빛 안개가 자욱해지면서 주변 모습들을 계속 바꾸어 놓고 있었다. 어떤 때는 하하 웃는 입들이 되었다가, 다른 때는 가까이 다가오는 휘어진 발톱이 되었다가, 때로는 검은 날개가 되었다. 그녀는 베개를 손톱으로 움켜쥐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죽고 싶지 않아! 싫어, 싫어, 죽고 싶지 않아!]
[검은 수염, 밤색 수염, 회색 수염, 금발 수염과, 오드콜로뉴, 제비꽃 향수, 사향, 패출리 향수 등 각기 다른 향수 냄새, 선실의 철제문이 닫히고, 무거운 커튼이 내려오고, 전깃불이 켜진다. 마담 오르탕스는 눈을 감는다. 그토록 사랑받았고, 그토록 고통받았던 그녀의 일생, 아, 하느님! 그게 겨우 일 초나 됐을까.]
- 마담 오르탕스는 그가 그토록 원했던 정숙한 가정주부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조르바의 살 냄새를 향수로 기억하며, 그의 난    봉꾼 기질마저도 행복으로 알고 노을이 되어 사라져 간 것이다.
 
케이블카 설치는 거의 완성되었다. 기둥들은 다 세워졌고, 케이블 줄도 바짝 당겨졌으며, 도르래도 설치되었다. 내일모레 케이블 준공을 앞두고 조르바는 그리스 국기를 게양하고 부산 떨며 적잖이 흥분되었다.
[“이 케이블 건설은 아주 중요한 겁니다.” 그가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정확한 기울기를 찾아내야 합니다. 완전 과학이죠! 저는 몇 달 동안 고민했지요. 하지만 다 소용없었어요. 인간의 머리란 위대한 걸 만드는 일에는 턱없이 부족하지요. 하느님의 계시가 필요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제가 고민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엾은 조르바, 그는 착한 사람이고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하려고 하니 내가 그를 도와주어야겠다.’ "자, 이 기적을 보십시오!” 조르바가 말을 멈추고 성호를 세 번 그었다.]
[“성부의 이름으로 아멘!” 수도원장이 소리쳤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다. 그 대재앙은 번개처럼 갑작스러워서 우리는 목숨을 건진 것만도 기적이었다. 케이블 전체가 심하게 휘청거렸다. 인부들이 케이블에 올려놓은 소나무 기둥이 미친 듯이 무서운 속도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불꽃이 튀고 나무가 갈라지면서 커다란 파편들이 공중으로 날았다. 그리고 불과 몇 초 만에 밑에 도착한 나무 기둥은 반쯤 타 있었다. 조르바는 매 맞은 강아지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수도사들과 마을 사람들은 멀찌감치 도망가 있었고, 근처에 매여 있던 노새들은 발길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뚱뚱한 도메티오스 신부는 땅에 바짝 웅크리고 있었다. “주여, 저를 기억하소서!” 잔뜩 겁을 집어먹은 그가 중얼거렸다.]
-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나무 기둥도 모두 박살 났다. 완벽한 실패였다. 조르바와 카잔자키스는 바닷가에 앉아 쓴 포도주를 마셨    다. 취기를 빌어 춤을 추던 조르바는 춤을 멈추고, 무너져버린 케이블을 하나씩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둘은 껴안고 웃음을 터    뜨렸다. 조르바가 꿈꾸었던 삶을 위한 구도는 완벽히 산산 조각났다. 어쩌면 인생이 그런 건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어디로 갈지는 각자 자신들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조르바는 케이블, 연장, 짐수레, 쇠붙이, 목재 따위를 바닷가에 쌓아놓고 그것들을 싣고 갈 화물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르바, 이걸 모두 당신에게 드릴게요.” 내가 말했다. “이제 이건 다 당신 거예요.. 그래도 돈이 좀 될 겁니다.” 조르바는 흐느낌을 억 누려는 것처럼 목을 감싸고 있었다. “헤어지는 거네요.” 그가 중얼거렸다. “대장, 대장은 어디로 갈 거요?]
- 카잔자키스의 요구에 조르바는 산투리를 쳤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술잔을 비우며 조르바는 낙타 몰이꾼들의 노래를 불렀    다. 헤어지는 과정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조르바는 진짜 사나이였던 자신의 아버지 담배 끊은 이야기를 하고는 홀연히 어둠 속으      로 사라졌다. 조르바는 상남자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닮고 싶었다. 그 뒤로 조르바를 다시 보지 못했다. 닭이 첫울음을 울기 전 노새    몰이꾼이 와서 카잔자키스는 노새를 타고 떠났다. 그 순간 조르바가 어디엔가 숨어서 자신을 훔쳐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별은 단    칼에 무 자르듯 이루어졌다.
 
[언젠가는 조르바가 아기온오로스에서 엽서를 보내왔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뺨과 슬프지만 단호한 눈매를 가진 성모 마리아 사진의 엽서에 그는 종이를 찢을 정도로 굵고 힘찬 글씨로 썼다. ”대장, 이곳에서의 일은 잘 안 됩니다. 이곳 수도사 놈들은 벼룩 발에도 편자를 박을 놈들입니다. 난 떠날 겁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다른 엽서가 날아왔다. “복권 장수처럼 앵무새를 들고 수도원을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 그놈을 괴상한 일을 즐기는 수도사에게 선물했수다. 그 수도사 놈은 찌르레기에게 성가를 가르쳤답니다.]
[그 뒤로 예닐곱 달이 지났다. 이번에는 루마니아에서 보낸, 풍만한 가슴을 가진 뚱뚱한 여인의 사진이 있는, 엽서 한 장을 받았다. ”아직도 살아 있어요. 마말리가를 먹고, 맥주를 마시면서 유전에서 기름에 빠진 생쥐가 돼 일하고 있수다.]
[다시 2년이 지난 뒤에 나는 새 엽서를 하나 받았다. 이번에는 세르비아에서 보낸 것이었다. “아직도 살아 있수다. 여긴 무지무지 추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결혼 했수다. 엽서를 뒤집어 보면 그녀의 낯짝을 볼 수 있죠. 매력 덩어리죠. 그녀 허리가 조금 부풀었는데, 그건 벌써 조르바 2세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죠.]
- 조르바는 그곳에서 마그네슘 광을 발견해서 또다시 자본가들과 얽혀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에 반해 카잔자키스는 모든      것을 중단하고 자기 인생에 단 한 번 과감한 미친 짓거리를 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조르바가 카잔자키스에게 가망 없는 먹물로      여긴다고 쓴 짧은 편지를 받았다. 그 점에서 조르바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 뒤로 이 둘은 다시 편지를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카      잔자키스는 조르바를 만난 인연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행운으로 생각한다.
  카잔자키스는 조르바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아무 일 없는 듯 흘려보낼 게 아니라 전설적인 이야기를 쓰기로 작정하고      아프리카 원시 부족의 마법사처럼 열정적으로 매달려 45일 만에 완성했다.
 
[글쓰기를 끝마친 날 황혼 녘에 나는 또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무릎 위에 완성된 원고를 올려놓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아기를 순산한 뒤에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여인처럼,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 가뿐해진 기쁨을 느꼈다. 해가 넘어가고 있는 바로 그때, 마을에서 내게 편지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소녀 소울라가 테라스로 올라왔다. 그녀가 내게 편지를 건네고는 도망치듯 뛰어서 사라졌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무릎 위에 완성된 원고를 올려놓고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 나는 이미 그 편지를 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조용히 편지를 읽었다. ”저는 시골 교사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마그네슘 광산을 운영하고 있던 알렉시스 조르바 씨의 슬픈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알렉시스 조르바 씨는 지난 일요일 저녁 6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그가 죽음과 마지막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저를 불러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선생님, 그리스에 내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내가 죽거들랑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또 그를 기억했다고 편지를 보내주슈. 그리고 난 내가 평생 한 짓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도 말해주슈. 그리고 잘 지내시고 이제는 정신 좀 차릴 때가 됐다고 쓰슈.]
조르바는 자신의 인생이 별거 없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산투리를 미망인 리우바를 통해 카잔자키스에게 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조르바의 파란만장했던 삶은 여기서 마감되었지만, 그의 삶을 위한 위대한 도전은 그리스인들의 영혼에 남아 전해질 것이다.
-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작가가 왜 이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고백하는 글이 편집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조르바와 함께한 시간 동안 갈탄광산을 개발하느라 돈과 시간을 허비했지만, 조르바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맺음말]
이 작품은 크레타 독립전쟁과 마케도니아 독립투쟁, 그리고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등으로 암울했던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그리스 크레타에서 격동의 시대를 산 두 주인공의 정신적, 육체적 모험과 고통을 잔잔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본 소설은 크레타 갈탄 광산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사업과 연애, 살아가는 철학 등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으면서도 흥미를 놓치지 않는다.
 
독후감에서 소설 전 분야를 다루기에는 분량이 많아서 크레타 갈탄광산에서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서술하고 독자, 입장에서 나름의 이해를 달았다. 소설 전반에 걸쳐서 조르바의 호탕한 성격과 방탕한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작가는 조르바를 만나서 큰 행운을 얻은 셈이다. 소설 ’’ 그리스인 조르바‘는 작가 카잔자키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성공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특이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은, 조르바와 갈탄광산을 경영하면서 손해를 많이 입었던 작가는 조르바를 등장시킨 소설을 세계적인 작품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엄청난 부를 이룰 수 있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작은 이익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믿음과 신뢰로서 자신의 내공을 잘 다져가면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이다.
 
조르바는 실존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행했던 일들이 조명되면서 그는 그리스인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학교에 가 본 적 없는 조르바는 평생을 육체노동으로 먹고살았으며, 삶의 현장에서 이성보다는 직관에 따라 항상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분히 충동적으로 주저 없이 행동한다. 조르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다,
 
젊었을 때, 조르바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 아군을 괴롭히는 적의 우두머리인 불가리아 신부를 암살하는가 하면 불가리아인들의 마을을 습격해 불을 놓기도 했다. 그런 자신의 애국적인 행동이 어떤 비극을 가져오는지 보면서 깊은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조르바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감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조르바와 헤어진 뒤 카잔자키스는 친구들과 함께 “배우지는 못했지만, 긍지와 논리를 초월한 자신감으로 가득 찬 조르바의 행보를 자랑스러워했다. 조르바는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켰으며, 세속적인 가치에 매달리기보다는 작가가 늘 꿈꿨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삶을 살았다. 조국이니 애국심이니 구원이니 하는 사회의 관습과 미덕을 모두 버리고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살았다. 조르바는 영원한 자유인이다.
 
조르바는 한 번도 크레타를 가 본 적이 없지만, 크레타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것은 작가 자신의 고향이 크레타인 까닭이다. 소설 ’’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독자 또한 조르바를 닮고 싶은 부분이 있다. 그는 쩨쩨하게 삶을 흥정하는 법이 없었으며, 언제나 막다른 골목에서도 기죽지 않았다. 또한, 어떤 위험이 닥쳐도 허둥대지 않고 침착했으며, 그는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결코 불의와 타협하는 법은 없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그는 나의 가슴을 넓혀주었으며, 정신을 평화롭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그를 통하여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와 같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삶을 살면서 적어도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면 나름의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르바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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