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의 인연으로 만난 니콜과 그의 어머니가 거주하는 집은 대저택 규모다. 현재 임대하거나 처분하고 남은 울타리 안의 면적은 10,000평 규모다. 호수와 테니스장, 수영장, 사우나실을 갖추고 있다. 한 때는 사슴 목장과 말도 몇 마리 키웠다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이 간다. 지금은 주택과 분리되었지만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큰 규모의 사무실은 임대하고 있다.
니콜 어머님은 이 지역 출신으로 현재 이혼한 상태다. 남편은 두바이에서 사업을 하며 새로운 부인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 지금도 생활비를 보내 준다고 하니 그들의 깊은 내막은 알지 못한다. 다만, 니콜 어머님은 크게 개의치 않은 듯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니콜 어머님은 이 지역 성주의 외손녀로서 미모가 출중한 멋쟁이다. 그만큼 스케일도 큰 편이다.
우리 일행을 정성껏 대접하기로 작정을 한 것 같다. 보통 아침 식사는 간편하게 먹는 편인데, 우리 일행이 머무는 시간이 짧다 보니 압축해서 대접하려고 아침 식사부터 이것저것 체코 정통 요리를 많이 준비했다. 그들의 정성을 받아주려면 양껏 먹어야 한다.
오전에 시내 투어 다녀오니 닭 육수에 소면을 넣은 수프와 빵과 닭고기, 파프리카 소스로 버무린 맛있는 점심을 준비했다. 이 지방의 음식이 우리 입맛에 잘 맞다. 간도 세지 않고 향도 적당해서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아 강남 고급 레스토랑에서 양식을 먹는 느낌이다. 니콜 어머니는 연세가 칠십인데 요리솜씨가 출중하다. 부잣집에서 오랜 기간 동안 숙련된 요리가의 품새가 느껴진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집과 정원 소개를 받고 포도밭과 와인 저장고가 있는 와인거리를 따라 언덕에 올라가니 전망이 일품이다. 시내 풍경과 모라바 강, 멀리 밀밭 풍경이 조망된다.
저녁 먹기 전에 컨트리송을 하는 지역 가수 두 분을 초청해서 거실에서 공연을 했다. 경쾌한 리듬의 체코 전통 음악에 따라 손뼉 치며 흥겨운 맥주와 와인의 리듬을 즐겼다. 여행에서 이런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단순한 관광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백미다. 니콜 어머니께서 얼마나 신경을 쓰셨는지 짐작이 간다.
니콜과 그의 어머니께서 재작년에 우리나라에 여행 온 적이 있다. 한국의 도시보다는 시골 정서를 느껴 보고 싶다고 해서 청도 내려가는 길에 남한산성에 있는 낙선재에서 한정식을 대접했다. 니콜 어머니께서는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청도 어머니 집에서 돼지고기 바비큐 파티를 하고 하룻밤 묵었다. 니콜 어머니는 그때의 바비큐와 시골에서의 하룻밤이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한다. 체코의 바비큐는 기름기가 없는 육고기에 갖은 소스와 치즈를 곁들이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숯불 바비큐는 기름기가 좀 있는 목살을 주로 사용하니 고소한 맛이 더 있다. 거기다 소스는 소금이나 참기름장만을 사용하므로 심플하여 고기 본연의 향이 살아있었던 점이 좋다고 느꼈나 보다.
이어진 저녁 만찬에는 닭 날개 숯불 바비큐와 숯불에 구운 소시지를 준비했다. 보드카를 곁들인 밤이 거나하게 취했다. 낮에 진눈깨비 날리고 바람이 세게 불어서 힘들었는데, 밤에는 다 물러가고 별들이 초롱초롱 눈을 뜨고 우리들의 만찬을 함께 즐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영하 6도까지 내려갔다. 겨울에도 이렇게 추운 적이 없는데, 혹독한 꽃샘추위를 겪고 있었다. 아마도 올해는 풍년이 들 조짐이 보인다. 꽃샘추위에 우리 일행은 이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정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꽃샘추위가 전해준 다시 만날 언약을 새기면서 이별을 한다. 니콜 어머님께서 자주 만나도 감성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 있고, 가끔 만나도 오랜 추억으로 남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 일행은 후자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아내도 눈물로 화답을 하고 아름다운 추억의 파일에 저장했다.
사진을 찍고 나오면서 다시 호수에 있는 백조와 눈을 맞췄다. 그는 날지 못하고 이 호수를 지키고 있다. 몇 년 전에 동물 구조 센터에서 날개가 꺾여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백조 두 마리를 입양해서 키우다가 한 마리는 죽고, 현재 나머지 한 마리만 남아 외롭게 호수를 지키는 백조의 호수가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을 장면이다. 니콜 어머니께서 가장 추억에 남는 게 뭐냐고 물었을 때, 주저 않고 날개 잃은 백조라고 말했다. 비록 날개는 꺾여 날수는 없지만, 안전한 호수에서 니콜 가족의 보호를 받으면서 남은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틀 밤을 보내면서 니콜 가족의 따뜻한 환대와 그들의 정성에 감복했다. 무릇 사람을 대할 때는 어떤 정성으로 맞아야 하는지, 내 나름의 지표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일시] 2025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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