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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 行

동유럽 기행(3일차) - 폴란드 콘스탄친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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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와 호흡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 중의 으뜸은 여행지의 아침을 달리는 것이다. 여행 3일 차 아침, 찌뿌둥한 몸을 바르게 펴고 가스 찬 속을 비워내려 콘스탄친의 숲 속 길을 달린다. 영하 기온을 들락거리는 쌀쌀한 아침 도로에 차량은 많지 않다. 2차선 도로 양옆에는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서 맑고 시원한 공기를 내뿜는다.

이곳의 숲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산이 아니라 평지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지 숲의 모습이 어색하기까지 하다. 일부러 숲을 조성한 것인지,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인지 알 수 없지만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은 든든하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1,000미터 이상 고산에 올라야 가끔 만날 수 있는 겨우살이가 평지 숲에 자신만만하게 기생하는 모습이 사뭇 다른 표정이다.

주택지가 바둑판처럼 조성되어 있어서 길을 잃기가 쉽다. 그래서 낯선 거리를 달릴 때에는 주변의 지형지물을 잘 기억해야 한다. 1km쯤 달렸을 때 삼거리 갈림길을 만났다. 마땅한 지형지물이 없어서 서리 맞은 빨간 승용차를 기억했다. 건널목에는 신호등이 없다. 그러나 모든 차량은 사람이 건널목 근처에서 건너려는 의지를 보이면 무조건 정지하여 사람을 먼저 보내는 것이 이곳의 규칙이다. 몇 개의 건널목을 지났지만, 신호등이 없어 달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5km 지점에서 턴했다. 마침 오늘이 서울마라톤이 개최되는 날이다. 풀코스를 신청했지만 당첨되지 못하여 억울한 마음에 10km 라도 달리자는 마음으로 신청하여 예약된 상태이다. 그런데 여행일정과 겹쳐서 그마저도 참가하지 못했다. 달리는 내내 서울마라톤에 참가하는 마음으로 숲 속 길을 달리는 기분이 남달랐다.

9km 지점 갈림길에서 길이 헷갈려 빨간 자동차를 찾았다. 아뿔싸 자동차가 없어졌다. 어리둥절해서 다음 갈림길 인가 하고 달려보니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 뒤돌아 와서 길잡이를 했다. 다행히 예정된 길이었다.

제가 달리기 하던 그 시간에 아내와 안 사돈은 전날 마트에서 봐 온 김치거리로 김치를 담갔다. 우리 일행이 먹을 것은 면세점에서 사 왔으니까 별도로 김치 담을 일이 없었다. 집주인 유스티나는 한식에 관심이 많은데, 김치 담그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해서 시작된 일이었다. 해외 여행지에서 김치 담그는 일은 또 하나의 행복한 이벤트였다. 재료가 부족하여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밀가루 풀 쑤어서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 양념을 넣고 나름 격식을 갖춰서 담았다. 소금이 우리나라 천일염과 달리 딱딱하고 쓴 맛이 많은 광산 소금이어서 김치맛을 염려했었는데, 다행히 배추 맛이 우리나라와 비슷하여 결과물은 괜찮은 편이었다.

유스티나는 주말인데도 오늘 하루 우리 일행의 가이드를 자청했다. 미안하고 고마운 여행 3일 차의 아침을 상쾌하고 기분 좋게 시작한다.

[일시] 2025년 3월 15일


겨우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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