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만나기 위해서 소백산을 오른다. 겨울 소백산은 한 해를 버텨내기 위한 백신 같은 것이었다. 올해도 망설임 없이 백신을 맞으러 소백산에 올랐는데 어쩐 일인지 바람이 없다. 십 수년 소백산을 친구처럼 만났지만 바람이 사라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봄날에도 바람이 만만찮은 소백산에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사실 소백산행을 준비하면서 마음을 다졌다. 아무리 거친 바람이어도 하나의 바람일 뿐이니 잘 견뎌내자. 힘겹게 버티다 보면 바람은 지나간다는 믿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산에 올랐는데, 바람이 사라졌으니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늘 피하고만 싶었던 바람이었기에 좋아할 만도 한데 오히려 바람을 기다린다. 어디에서 바람을 구할까. 너무나 흔한 바람이었기에 대수롭잖게 여겼는데, 막상 바람이 사라진 소백산 능선을 걷노라니 마음까지 허해진다.
천문대를 지나면서 스치는 엉뚱한 생각 한 자락. 소백산에 별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늘 가까이 있었기에 그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는 바람과 별. 그들은 공존의 의미였다. 그들이 곧 자연이어서 그들을 떠나서는 인간은 생존할 수 없다. 그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따뜻한 아이스커피 같은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야 할 소백산에 바람이 사라지니 별 별 헛된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때는 바람을 피하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했지만, 바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없으니 덜컥 겁이 난다. 소백산에서 바람을 기다리게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음에 소백산에서 세찬 바람을 만나면 가슴 터지도록 안아주자.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으면 미칠 듯이 포옹하자.
'바람아 멈추어다오'라는 유행가 가사를 떠올리며 '바람아 기다려다오'라고 읊는다. 하루 종일 흥얼거릴 것이다. 하루 해가 저문다고 울터이냐 그리도 내가 작더냐 별이 이지는 저 산 너머 내 그리 쉬어가리라. 바람아 불어라 이내 몸을 날려주려 마 하늘아 구름아 내 몸 실어 떠나가련다.
[산행 경로] 죽령 - 제2 연화봉 - 연화봉 - 제1 연화봉 - 비로봉 - 천동계곡 - 다리안(19km)
[산행 시간] 6시간 5분